입춘, 우리의 설날
입춘이 되었지만 아직 날은 겨울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곧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말이죠. 그러나 농부는 입춘 날 봄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흙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봄을 느낄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봄은 흙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흙을 시멘트로 덮은 위에서 사는 사람이 어떻게 봄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럼 봄은 어떻게 올까요? 봄은 바로 냉이 뿌리를 타고 올라옵니다. 겨울 추위를 받아 웅크리고 있는 입춘의 냉이를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놈을 꼬챙이로 살 파보면 초라한 이파리와 다르게 길죽하게 잘 빠졌으면서 토실토실하게 살찐 냉이 뿌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걸 보고는 한 숨에 “이~야!!!” 감탄사가 절로 나지요. 대충 흙을 털어내고 입에 넣어보면 입안에 봄이 가득합니다. 그렇게 농부는 봄을 느낄 수 있답니다. 냉이 뿌리에는 단백질이 많이 담겨있답니다. 물론 비타민도 많지요. 겨울 잠에서 깨어난 곰이 제일 먼저 먹는 것이 바로 냉이랍니다. 입춘이라고는 하나 아직 추운 겨울인지라 먹을 게 냉이 말고는 없지요.
우리의 음력 설날은 입춘 근방에 있습니다. 입춘에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글자를 써서 대문에 붙이는 것을 보면 입춘도 음력 설날에 버금가는 설날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면 정월 1월은 우수(雨水)에 듭니다. 24절기는 입춘부터 시작하는데, 첫 시작 절기를 절, 그 다음 오는 절기를 중이라 하고 순서대로 절, 중, 절, 중으로 이어갑니다. 그러니까 입춘은 절, 우수는 중, 경칩은 절, 춘분은 중이 됩니다. 중이 들어가는 절기를 기준으로 음력 달도 정해지지요. 우수가 1월, 춘분이 2월, 곡우가 3월, 소만이 4월, 하지는 5월, 대서는 6월, 처서는 7월, 춘분은 8월, 상강은 9월, 소설은 10월, 동지는 11월, 대한이 12월 그러니까 섣달이 됩니다.
왜 우수를 정월로 삼고 입춘을 설날로 삼았을까요? 사실 제일 한 해의 기점이 되는 것은 동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지를 작은 설날이라 했습니다. 12지지(地支)로 볼 때는 자월(子月), 첫 시작 달로 삼았지요. 이는 양력입니다. 태양이 기준이니까요. 그럼 음력설은 동지를 지나 처음으로 오는 그믐날로 삼는 게 상식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음력설은 그보다 한 달이 넘게 더 지나서 옵니다. 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구는 동지 근방에 와서 공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으로 도는 지구는 동지 때 태양과 가장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지와 대한 사이가 제일 짧아 어떨 때는 한 달 안에 동지와 대한이 함께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동지 다음에 오는 중, 곧 대한을 동지 다음 달로 삼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대한 다음인 우수를 정월달로 삼아야 하는 것이지요. 동지가 있는 음력 11월 하순경에 대한이 낄 경우 12월을 없애고 바로 1월로 넘어가도록 했습니다. 동지에는 윤달을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좀 복잡해 이해가 잘 가질 않지요. 복잡한 계산은 뒤로 하고, 사실 입춘을 설날 기준으로 삼은 것은 농경 사회의 반영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설날은 농사를 시작하는 날이지요. 농사를 시작한다고 하면 파종을 떠올리겠지만 우리는 파종보다는 거름 준비, 종자 손질을 농사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본격적인 파종은 춘분을 기점으로 합니다. 그래서 춘분을 설날 기준으로 삼은 사회도 있습니다. 유대인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렇지요. 여하튼......
입춘이 되면 집안의 어른은 한 해 길흉을 보았습니다. 먼저 입춘이 음력 설날보다 빨리 오면 그해 봄은 춥다고 보았습니다. 제가 실제로 그런 해를 보았더니 다 맞았습니다. 작년 2007년도 설날이 입춘을 한참 지난 2월 18일날이었는데 봄이 춥고 꽃샘추위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입춘 일진을 봅니다. 60갑자로 입춘날이 어떤 일진인가 보는 것이죠. 올해 입춘 날은 갑술(甲戌)입니다. 입춘 일진에 갑, 을이 들면 대개 풍년 들고, 병, 정이면 큰 가뭄이 들고 무, 기 이면 밭 곡식이 손상되고, 경, 신이면 사람들이 안정되지 못하고 임, 계이면 큰 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자세하게 60갑자에 맞춰 각각 일진에 해당하는 그 해 길흉을 점쳤습니다.
길흉을 따져보는 다른 방법으로 보리 뿌리 살려보는 게 있습니다. 보리 뿌리가 세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작,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보았습니다. 뿌리가 많으면 튼튼하다는 뜻이니 당연히 수량도 많겠지요. 뿌리가 적다는 것은 겨울 날씨가 순조롭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그해 날씨도 순조롭지 못하다고 예측한 것이겠지요.
입춘에 선 봄은 그야말로 살짝 맛보기만 보여주고 이내 꽃샘추위가 몰아닥칩니다. 아직 추위가 남았다 해서 여한(餘寒)이라 하는데 어떨 때는 소한, 대한 추위보다 더 할 때가 있습니다. 작년 2007년이 그랬지요. 꽃샘추위는 꽃피는 봄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말이지만 농사에서는 아주 요긴한 추위입니다. 입춘 지나 우수, 경칩이 되어 벌레가 봄이 온 줄 알고 알에서 깨어났는데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추위에 얼어 죽고 맙니다. 말하자면 생태청소꾼인 셈입니다. 이런 꽃샘추위가 없다면 그해 농사에 병해충이 많이 발생합니다. 가을 벌초할 때 가끔 발생하는 말벌 떼의 습격이 잦으면 겨울도 따뜻하고 꽃샘추위도 별 볼일 없었기 때문입니다.
입춘에 제일 중요한 농사일은 거름 뒤집기, 종자 손질하기, 보리, 밀 밟기입니다. 거름은 가을에 만들어 놓은 것을 한 번 뒤집어 주든가, 겨우내 모아 둔 똥오줌과 아궁이 재, 낙엽이나 마른 풀, 왕겨나 볏짚 등과 켜켜이 쌓아 새로 거름 더미를 만들어 둡니다. 겨우내 처마 밑에 걸어두었던 이삭을 꺼내 씨앗을 걸러내고 체와 키로 까불리고는 계란이 뜰 정도의 소금물에 담가 가라앉는 놈들을 선별해서 종자로 씁니다. 보리밟기를 하는 이유는 겨우내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느라 서릿발이 서서 흙이 떠버려 뿌리가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밀도 마찬가지고, 양파나 마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로 살짝 밟아주면 됩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를 보면 입춘 날씨에 따라 그해 농사 길흉을 점친 내용이 나옵니다. “입춘에 비가 내리면 오곡에 해를 끼치고, 입춘일이 청명하고 구름이 적으면 그 해에는 곡식이 잘 익으나, 입춘일이 흐리고 음습하면 그해는 벌레들이 벼와 콩을 해친다.” 입춘은 따뜻한 봄을 알리는 날이니 봄 같지 않게 비가 온다거나 음습하다면 농사에도 좋을 게 없겠지요. 입춘 전날인 오늘 오후에 잠깐 아내와 함께 바람 쐬러 나갔습니다. 과연 봄 기운이 느껴지는지 차창으로 내려오는 따뜻한 봄 햇살을 아내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해도 풍년이 오려나 봅니다.
우수, 비로소 봄이오다
우수가 되면 비로소 우리는 피부로 봄을 느낀다. 올해 우수인 2월 19일은 실감나도록 따뜻한 날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3일 뒤에 살짝 뿌렸다. 이 정도로는 겨울 추위로 얼어붙은 흙을 풀리게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어쨌든 봄은 입춘이 아닌 우수가 되어야 누구나 피부로 봄을 느낄 수 있다. 우수 비에 대동강 물이 풀리고 겨울 철새인 기러기가 북으로 날아간다. 땅 속의 벌레들도 슬슬 기지개를 킨다.
사실 사립四立 절기(입춘, 입하, 입추, 입동)들을 보면 그 계절이 일어섰다고 하나 그 계절은 다음 절기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봄은 입춘 다음인 우수, 여름은 입하 다음인 소만, 가을은 입추 다음인 처서, 그리고 겨울은 입동 다음인 소설에 비로소 느낄 수 있다. 특히 소설에 가면 “빛을 내서라도 이때는 반드시 춥다”는 속담이 있듯이 꼭 강추위가 닥친다. 하필 이때 대학 수능 시험이 들어있어 사람들은 이를 입시한파라 하지만 실제는 소설 추위다. 철의 변화는 잊고 오로지 전국이 입시 전쟁으로 냉전을 겪고 있으니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다. 이 소설 추위를 당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처절하게 인정하게 된다. 24절기 중에 비 우(雨)자가 들어간 것은 우수와 곡우(4월 21일경)뿐이다. 비가 비답게 내리는 철은 6월 하지를 거쳐 소서, 대서 기간이지만 이 때는 비 우(雨)자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니까 우수의 비와 곡우의 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수의 비는 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비이고 곡우의 비는 씨앗을 뿌리라는 비다. 이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봄 가뭄이다. 가뭄 중에는 여름 가뭄보다 봄 가뭄이 더 무섭다. 봄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뿌린 씨앗이 싹은커녕 말라 비틀어져 버릴테니 무슨 대책을 세울 도리가 없다. 여름 가뭄이 든다 해도 이미 싹이 터 있는 상태라면 어떻게라도 해 볼텐데 봄 가뭄은 대책을 세우기 힘들다. 그래서 아마 봄비가 더 중요한 의미로 비 우(雨)자를 두 군데에나 넣은 것이지 않나 싶다.
우수와 곡우 사이에 춘분이 있다. 그러니까 한 달 간격으로 있는 것이다. 춘분 때에도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 춘분은 비로소 낮이 밤보다 길어지고 날씨도 영상으로 돌아서 본격적으로 파종을 시작하는 철이다. 그래서 춘분의 비는 곡우의 비처럼 뿌린 씨앗 잘 싹트라는 의미다. 춘분 때 뿌리는 씨는 봄작물이고 곡우 때 뿌리는 씨는 여름작물이다. 그러니까 우수의 비는 추위를 가시게 하고 춘분, 곡우의 비는 씨앗을 심는 비인 것이다.
그런데 봄비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좋지 않은 비도 있다. 우수의 비로 땅이 풀렸는데 또 비가 오면 땅을 질척지게 한다. 귀찮은 비인 것이다. 춘분 때 파종하고 비가 왔는데 또 오면 싹튼 씨앗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이또한 귀찮은 비다. 곡우 때도 마찬가지다. 2007년도 우수, 춘분, 곡우 때 알맞춤하게 비가 왔는데 그 사이사이에도 불청객 비가 왔다. 그러니 자연은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해주지 않는 것 같다. 곡우의 비가 오고 나면 소만, 망종이 오는데 이 때 꼭 가뭄이 온다. 바야흐로 봄가뭄인데 벼 입장에서는 좋지 않지만 밀이나 보리 입장에서는 좋은 가뭄이다. 비가 오면 밀, 보리 이삭이 제대로 익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수가 24절기 중에 차지하는 가장 큰 의미는 음력 정월이기 때문이다. 앞의 입춘에서 설명했지만 반복하자면, 입춘은 절이고 우수는 중인데, 이를 정월 곧 1월로 삼았다. 입춘은 어떨 때는 12월 섣달인 때도 있어 정월달로 삼을 수가 없다. 경칩은 절이고, 춘분은 중이며 2월이다. 청명도 절이고 곡우는 중으로 3월이다. 입하는 절이고 소만은 중이며 4월이다. 망종은 절이고 하지는 중으로 5월이다. 이렇게 주 욱 수열처럼 이어지고 마지막 동지는 중으로 11월이며 소한은 절이고 대한은 중으로 12월 섣달이 된다.
옛날 달력은 달을 보고 알았다. 지금처럼 각종 화려한 달력(카렌다)이 없던 시절이라 밤하늘 달의 모양을 보고 오늘이 며칠인지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달이 제일 동그란 보름이면 15일, 깜깜한 그믐이면 1일로 친 것이다. 그런데 달의 한달, 곧 달의 공전 주기가 29. 5일이어서 달로 1년을 계산하면 354. 3일이 되어 태양의 1년인 365.2에 비해 11일이 모자란다. 이렇게 음력과 양력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대략 3년에 한번씩 음력 윤달을 끼워 넣어야 한다.
이렇게 윤달을 끼워 넣어 음력의 편차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양력인 24절기다. 그러니까 24절기 가운데 중(中)으로 음력의 달을 결정하여 앞에서 얘기한 한 대로 중에 해당하는 우수를 음력 정월로 삼은 것이다. 그러면 순서대로 계산하여 춘분은 2월에 들고 곡우는 3월에 들고 소만은 4월에 들고 하지는 5월에 들며 계속 이어져서 동지는 11월에 들고 대한은 12월에 들어야 하는데, 음력과 양력의 편차 때문에 중이 없는 달이 생기게 된다. 이를 무중월(無中月)이라 한다.
그런데 지구는 태양 주위를 타원으로 돌기 때문에 하지 근방에서는 천천히 돌고 동지 근방에서는 빨리 돈다. 말하자면 하지 근방에서는 한 달 기간이 조금 길고 반면에 동지 근방에서는 한 달 기간이 조금 짧게 된다. 그러다보니 무중월은 하지 근방에서 생기고 동지 근방에서는 중이 두 번 드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를 중중월(重中月)이라 한다. 동지와 대한이 11월 동지달에 드는 경우다.
하지 근방에서 무중월이 생기면 편차를 줄이기 위해 윤달을 끼워넣는다. 그러니까 5월에 들어야 할 하지가 6월1일에 들었다면 무중월이 된 5월을 윤4월로 하고 하지가 든 6월1일을 5월 1일로 억지로 당기는 것이다. 이렇게 무중월을 윤달로 삼는 것을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 한다. 우수 근방에 음력 대보름이 든다. 대보름 때는 쥐불놀이, 달집태우기와 보리밟기를 한다. 쥐불놀이나 달집태우기는 풍년들기를 기원하는 의식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실용적으로는 들녘의 마른 풀을 태워 살균도 하고 풀씨도 태우는 의미가 담겨있다. 보리밟기는 서릿발에 뜬 보리 뿌리를 발로 살짝 밟아주어 통풍을 막아 뿌리 썩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더불어 지난 늦가을에 만든 퇴비를 뒤집어 주고 겨우내 모아놓은 똥오줌으로 마른풀과 섞어 새로운 퇴비더미를 만든다.
경칩, 개구리 따라 사람도 기지개 켠다
우수가 지나니 한 낮엔 확실히 봄기운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러나 안심해선 안된다. 아침 저녁으로 아직은 찬 겨울 기운이 남아있다. 낮에도 스산한 바람이 따뜻한 햇살 속에 숨어 있어 맘을 놓을 때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 지 여기저기서 감기 걸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앞의 ‘무자년을 꼽으며’라는 글에서 올해는 화기火氣가 강한 해라 가물고 더우면서도 기상 변화가 심하고 날씨가 고약하다고 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라고 하더니 올 해는 환절기가 유난히 변덕이 심한지라 화재도 많이 나고 감기도 많이 걸리는 것 같다.
우수 지난 며칠 뒤 취재차 시골에 갔다가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복수초를 보고 왔다. 같이 간 벗이 잔뜩 감기를 안고 있는데 차 안에서 나도 그 감기를 나눠 갖고 말았다. 미안해하는 그 친구에게 말로는 “감기도 가끔 걸려줘야 건강에 좋아”했지만 올라오는 운전은 좀 힘이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전날 밤부터 홀쭉홀쭉 콧물을 흘리던 게 영 찝찝한 차 였다. 차 안의 햇살은 따스한데 한 데의 바람은 아직 매서운 데가 있어 더했다. 힘들어 하며 차에서 내린 친구는 어찌 감기를 다스렸는지 모르겠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 친구와 헤어지며 감기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아침 찬바람을 탓하며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니다. 농부의 마음은 본격적으로 바빠질 때다. 어제는 밀밭, 양파, 마늘밭을 가 보았더니 서릿발이 심하지 않았다. 서릿발이 심하면 뿌리가 땅에서 들쳐져 그 틈으로 봄기운이 스며들고 뿌리를 말리기 때문에 뿌리를 밟아 주어야 한다. 아마 서릿발이 심하지 않았던 것은 풀 거름을 많이 주었기 때문인 듯하다. 작년 늦가을 밀, 마늘, 양파를 심으면서 흙 대신에 완전히 삭은 풀 거름을 덮어준 것이다. 물론 그 위에다 질소질 거름도 주었다. 경칩도 지났으니 이제는 겨우내 모아둔 오줌거름을 웃거름으로 두세 번 뿌려주면 아주 잘 자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경칩 근방이면 음력으로 2 월 초하루가 있다. 2월 초하루는 머슴날이라 했다. 바야흐로 머슴들이 힘들게 일할 때인 것이다. 양반들은 머슴들을 부리기 위해 이날 떡과 맛있는 음식을 해 주었다. 경칩驚蟄이라는 뜻은 벌레가 놀라 깬다는 것인데, 옛날 사람들은 이 날 처음으로 하늘에서 천둥이 울려 이 소리에 땅 속의 벌레들이 놀라 깬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천둥소리와 무관하게 따뜻해진 날로 벌레들도 깨어나고 개구리도 깨면서 따라서 함께 사람도 머슴도 깨어나 바 쁜 살림살이에 들어가야 한다.
논과 밭에선 보리밟기로 시작하고 집에서는 벽을 바르거나 무너진 담벽을 보수했다. 경칩이 되면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하며 흙이 부드러워져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했다. 또한 노래 기를 퇴치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는 봄기운에 깨어난 벌레들 중에서 사람에게 좋지 않은 벌레들을 퇴치하여 위생을 깨끗이 하고자 한 것이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잿물을 만들어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기도 했다.
건강을 위해 개구리 알이나 도룡뇽 알을 생으로 먹는 풍습도 있다. 지금도 이 풍습은 남아있어 자연의 생명을 해치는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고전 예기禮記의 월령에는 경칩에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 을 기르고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고 되어 있다.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을 이름이니 주변의 꼬물락거리는 생명들을 꼼꼼히 보살필 일이다.

춘분, 뭇 생명이 일제히 소생하는 완연한 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봄다운 봄이 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3일전인가 산수유가 꽃 몽우리를 내밀더니 춘분인 오늘 화들짝 만개를 했다. 남쪽에는 매화 소식이 들려 온지 며칠 되었다. 이제 며칠 안 있으면 개나리도 지천으로 만발할 것이고 산에는 진달래가 연한 핏빛의 기운으로 퍼져갈 것이다. 그러나 봄기운을 대표하는 것은 꽃만이 아니다. 어쩌면 꽃보다 더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을 새순들이 힘차게 돋아나기 시작할 것이다. 냉이와 씀바귀 광대나물 꽃다지 등의 나물들이야 진작에 자리 차지하고 힘을 내기 시작했지만 할미꽃, 수선화, 상사화, 창포, 제비꽃 등의 예쁜 꽃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새순을 들어 올리느라 애를 쓰고 있다.
작물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심었던 밀 싹들이 겨우내 풀죽은 듯이 죽어있더니 춘분 즈음이 되자 힘차게 녹색 기운을 머금으며 힘을 내고 있다. 겨우내, 아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칙칙하다 싶을 만큼 밝지 않고 힘없는 녹색의 풀에 불과했는데 이젠 젊은 녹색의 기운이 맑은 햇빛을 받으며 맘껏 뽐내는 것 같다. 양파들도 몇 개들만 은근히 힘을 내는 듯 하더니 힘찬 녹색의 기운이 양파 밭 전체에 걸쳐 퍼져있다. 마늘은 작년에 비해 일주일 늦게 순이 올라왔다. 춘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면서 이제 낮이 더 길어지기 시작하는 전환점이다. 그에 따라 온도도 더 이상 영하로 내려가질 않는다. 입춘 이후 한낮에만 얼굴을 드러내던 봄기운이 아침 저녁에도 환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니 바야흐로 본격적인 봄의 세계가 온 것이다.
그래서 춘분도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 설날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낮이 밤을 이기기 시작하고 날씨도 영상으로 확실히 돌아섰으며 만물이 본격적으로 소생을 하는 철이니 한 해의 시작이라 하기에 적당한 것이다. 해가 가장 짧았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도 정월로 삼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 같지만 날은 본격적인 겨울을 준비하고 있으니 작은 설날에 만족해야 했다. 동지가 설날에 적당치 않다면 그 다음으로 가장 적당한 절기는 역시 춘분 밖에 없다. 낮이 드디어 밤을 이기기 시작한다는 점이나 만물이 소생하는 절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실제로 춘분을 설날로 삼았던 지역이 있었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그러했다고 한다. 춘분이 되면 그들의 주식인 밀이 본격적으로 성장을 개시하기 시작하므로 더더욱 설날로서 춘분의 의미가 깊다 하겠다. 밀만이 아니라 가축의 먹이가 되는 목초들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생장을 개시하므로 가축들을 다시 키울 수 있으니 여러모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메소포타미아 지역만이 아니라 밀과 고기를 주식으로 했던 지역에선 춘분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가령 기독교에서 예수가 부활한 날을 춘분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도 만물이 소생하는 춘분의 의미와 관련이 깊다. 성경에는 예수의 생일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예수가 부활한 날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후 후세들이 억지로 날을 만든 것인데 이는 다분히 로마의 고대종교에서 동지 축제와 함께 춘분 축제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하여튼 서양이나 동양이나 춘분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우리는 춘분을 설날로 삼기에는 너무 늦다. 서양처럼 밀을 주식으로 삼기에는 겨울이 너무 추워 밀 생장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우리는 밀보다는 벼가 잘 자라는 몬순 기후의 환경인데 벼 중심의 여름 곡식 농사를 잘 지으려면 춘분 이전, 그러니까 입춘 지나서부터 한해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앞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종자 준비, 퇴비 준비, 밭이나 논을 갈고 둑 정비를 하는 작업이 춘분 이전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춘분이 지나면 모든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데 특히 감자와 봄채소들이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 감자를 제일 먼저 심고 감자를 심은 다음에는 강낭콩, 완두콩을 심으며 얼갈이나 상추 시금치 아욱 등 채소를 심는다. 여름 작물들은 서리가 사라지는 곡우를 기점으로 곡우 이후에 싹이 나도록 파종하는 것이 좋다. 괜히 일찍 파종하여 싹이 났을 때 서리를 맞으면 냉해를 입어 죽거나 약하게 자란다.
청명, 맑고 화창한 봄날
청명, 참 이름답게 청명한 봄날이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예쁜 꽃들을 자랑하니, 양지 바른 땅에서는 제비꽃들이 뒤질세라 앙증맞게 피어나고 있다. 사계절이 자기의 본색을 절정으로 뽐내는 절기는 청명처럼 4절 기(춘분, 하지, 추분, 동지) 직후에 오는 절기다. 그러니까 봄은 춘분 다음 청명에서 절정에 이르고, 여름은 하지 다음 소서에서 절정에 이르고 가을은 추분 다음 한로에서 절정에 이르고 겨울은 동지 다음 소한에서 절정에 이른다.
사실 해의 기운은 4절기를 지나면 다음 계절로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예컨대 동지 지나면 해가 살아나기 시작하니 겨울을 지난 것이고, 하지 지나면 해가 죽어드니 여름을 지난 것이나 다름없다. 마찬가지 로 춘분 지나면 해는 봄을 넘긴 것이고 추분 지나면 해는 가을을 넘긴 것이다. 그럼에도 지구는 태양의 기운을 받아 놓은 복사열 때문에 해의 기운대로 쫓아가질 않는다. 방금 설명했듯이 지구는 4절기를 지나야 본격적인 그 계절의 절정에 이르는 것이다.
춘분이 지나면 완연한 봄의 계절이지만 아직 아침 저녁에는 약간의 찬 기운이 남아있다. 영상의 날씨로 확실하게 돌아섰지만 아침에는 영상 3~5도 정도다. 그러나 낮에는 10~15도 정도 되어 일교차가 꽤 크다. 게다가 올해처럼 입춘이 설날 전에 오면 봄 추위가 길어져 춘분이 지나도 꽃샘추위가 올 수 있다. 그래서 발아가 금방 되는 채소 종자를 춘분에 바로 심으면 싹이 나왔을 때 마지막 꽃샘추위가 불어 닥쳐 냉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 감자는 발아가 늦으므로 춘분에 심어도 피해를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제일 안전한 파종은 춘분 지나 청명 직전에 하는 것이다. 청명에는 식목일과 한식이 겹치기 마련이다. 식목일 은 나라에서 정한 나무 심는 날이다. 식목일을 청명에 맞춘 것은 바로 청명이 뭐든지 심기에 안전한 절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나무 묘목을 심을 경우 청명 이전, 춘분에 심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다. 나무는 청명이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눈을 틔워 활동을 개시하는 시점이기에 그 때 옮겨 심으면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틔기 전, 그러니까 나무가 아직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때 옮겨 심어야 타격이 덜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청명 쯤 되어야 날씨도 화창하여 나무 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한식(寒食)은 동지 후 105일째로 4대 명절 중에 하나다. 설날 다음으로 오는 두 번째 명절인 것이다 . 그런데 한식 때 성묘를 가는 것이 참 이해가질 않았다. 추석 때처럼 산소에 풀이 많이 난 것도 아니고, 추수할 것도 없는데 무슨 일로 산소엘 갈까? 어느 봄날인가, 시골 가다 퍼뜩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밭 위 제일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은 한 무덤을 보고 말이다. 전형적인 농경 사회인 우리나라는 절대적인 신보다는 조상신을 섬겨왔다. 물론 어느 나라든지 최초의 신은 조상신이었을 것이다. 조상신이 발전하여 절대적인 신이 되었 을텐데, 우리는 그렇게 나아가질 않았다. 굳이 조상신 위에 있는 존재를 얘기하자면 삼신할매 정도다.
농경 사회는 기본적으로 붙박이다. 특히 밀농사가 아닌 벼농사 중심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붙박이로 산다 는 것은 사실 조상 은덕으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버지가 농사짓던 땅, 그 위로 할아버지가 농사지었고,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에서 목숨을 부치고 있으니 어찌 조상 덕에 산다 하지 않을 수 있을 까. 그 땅이 또한 그냥 내려온 것이 아니다. 온갖 정성을 다해 퇴비를 넣고 열심히 갈며 비옥한 땅을 지켜왔기에 현재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그 땅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먹고 살아 가야 한다. 그러 려면 땅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는 법이다. 나도 조상들처럼 신이 되어야 한다. 땅을 비옥하게 갈고 닦는 농부의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같이 붙박이 사회의 공동체는 죽은 조상 귀신도 같은 식구이고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도 같은 식구이다. 시간을 초월한 공동체인 셈이다.
목축, 유목을 하는 밀농사 지역에선 조상신보다 절대적인 신이 중요했다. 가축의 먹이인 목초는 사람이 재배하는 작물이 아니라 자연이 키워주는 것 이다. 그 목초는 그들에게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목초를 잘 키워주는 자연은 자연스럽게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밀농사는 벼농사와 다르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농사지어야 한다. 이른바 윤작과 휴경을 꼭 지켜야 하는 농사다. 게다가 목축, 유목이 더 그들의 이동 문화를 발달케 했다. 붙박이 문화에서 차지하는 조상신의 가치가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덜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와서, 그럼 한식 때 왜 조상들을 찾아 뵈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밭에 씨앗을 심고 조상님들에게 한 해 농사 잘 되게 해 달라는 신고식이자 기원이었을 것이다. “조상님들이 일구어놓은 이 밭에 씨앗을 심었으니 잘 되게 해주십시오.”하고 말이다. 한식 때 성묘 가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겨우내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며 자칫 봉분이 허물어졌을 수도 있고 무덤의 떼가 들떠 있을 수도 있다. 허물어진 봉분은 다시 돋아주고 들뜬 떼는 밟아주거나 구멍 난 곳은 새 뗏장 으로 메워주어야 한다. 청명 즈음해서 음력으로 중요한 날이 삼짇날이다. 음력 3월 3일은 양의 날이 겹쳐서 아주 길한 날로 여겨왔다. 작년 9월 9일 강남으로 돌아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다. 삼짇날은 원래 음력 3월 들어 첫 번째로 오는 뱀날(상사일上巳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날이 따뜻해 뱀도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라 이날 뱀을 보면 재수 좋다고도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재수 없다고도 하는 데가 있다. 어쨌든 삼짇 날이 되면 완연한 봄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하여 봄꽃 구경하러 봄나들이 가는 날이기도 하다. 진달래꽃 따다 화전도 부쳐 먹고, 양지 바른 곳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어린 쑥나물 뜯어다 쑥버무리 해먹기도 한다. 청명이 되면 이제 안심하고 무엇이든 파종을 하면 되는 날이니 화사한 봄꽃에 마음 들뜨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몸을 놀려 농사에 매달려야 한다.
곡우(穀雨), 바야흐로 본격적인 농번기
비는 하지 지나 장마철에 대부분 쏟아지는데 비 우(雨)자가 들어있는 절기는 우수(雨水)와 곡우(穀雨) 뿐이다. 그만큼 이 때의 비가 농사에 있어서는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수 때 내리는 비는 겨울 동안 언 땅을 녹여준다. 곡우 때의 비는 말 그대로 곡식을 심을 수 있게 해준다. 비 우자가 들어있지 않지만 춘분 때도 비가 내린다. 이 비도 마찬가지로 곡식을 심게 해주는 비다. 이 세 번의 비는 농사를 시작하게 해주는 고마운 비다. 비가 내려야 온 땅이 촉촉해져서 씨를 심고 싹을 틔울 수 있다. 싹도 틔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여름에 많은 비가 쏟아져도 소용이 없다. 봄에 비가 잘 내려 싹을 틔우고 뿌리만 잘 내린다면 여름에 가뭄이 와도 뭔가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우수, 춘분, 곡우의 비는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비다. 올해도 다행히 적당히 이들 비가 내려주었다. 4월 20일 곡우 때도 비가 내린다고 하니 올해는 분명 풍년이 될 조짐이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봄비도 있다. 우수, 춘분, 곡우 비가 적당히 내렸는데도 비가 한 번씩 더 오는 경우다. 작년이 그랬다. 가령 우수 전후에서 우수비가 내렸는데 바로 또 비가 오면 녹은 땅이 진땅이 된다. 진땅이 되면 마르면서 땅이 굳는다. 춘분 때 비가 내려 파종을 했는데 또 비가 내리면 싹을 틔우려 애쓰고 있는 씨앗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곡우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가문 것에 비하면 이는 배부른 소리다. 올 겨울에 별로 눈이 오질 않아 가뭄이 심한 것에 비하면 아직 올해 봄비는 좀 모자란 느낌이다. 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밭에는 살짝 긁는 괭이질에도 먼지바람이 인다.
곡우가 되면 농부들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춘분 때까지만 해도 사실 농한기의 여파가 남아있어 농부의 입가에는 여전히 하품이 맴돈다. 청명이 되어 따뜻한 햇살에 막걸리라도 한 대접 목을 추기며 점심을 한 뒤에는 살짝 봄졸음이 찾아온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을 지나니 정신이 없다. 감자를 심었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얼갈이 심고, 아욱, 시금치, 홍당무, 상추 심고 바로 강낭콩에 완두콩까지 냅다 내달린 기분인데 어제는 고추 심을 준비하느라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다.
올해는 직파 고추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모종 고추를 앞으로는 하지 않으려 한다. 작년에 일부 고추를 직파했더니 병해충에도 강하고 무엇보다 지주와 끈을 띄워주지 않아서 좋았다. 당연히 수확량은 대폭 줄었다. 정확히 재지는 않았지만 반도 되질 않았던 것 같다. 키도 크질 않고 고추도 늦게 달리는데다 포기당 달린 양도 적다. 그래서 포기수를 1.5배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니까 200주 심던 것을 300주로 늘려 적은 수확량을 메워보려는 것이다. 작년엔 거름을 많이 주면 키가 커서 자칫 지주를 세워주어야 할 것 같아 거름을 적게 주었으니 올해는 적당히 거름을 주어 제대로 키워보려는 것이다.
겨우내 풀과 음식물과 똥과 오줌을 섞어 만든 완숙 퇴비를 평당 10kg 넘게 주고 제초 덮개로 신문지를 씌워주었다. 신문지는 작년에 풀을 쑤어서 두루마리를 만들어 둔 게 많이 남아 그것으로 덮으니 세 사람이 일사천리로 일을 끝냈다. 농사일은 혼자 하면 쉬엄쉬엄 놀면서 할 수 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분업해서 하면 정신이 없다. 일의 효율은 뛰어나지만 내 몸의 바이오리듬은 전적으로 무시해야 한다. 신문지 덮개는 쓸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효과도 뛰어나고 두루마리 만들기도 쉽고 나중에 다 삭아버리니 수거할 필요도 없어 참 좋은 것인데 잘 퍼지지 않으니 아쉽기만 하다.
두둑은 좁고 높은 한 줄짜리로 만들지 않고 폭 1미터20센티미터 정도의 두 줄짜리 낮은 두둑을 만들었다. 배수도 잘 되는 편이어서 늘 그렇게 만들어왔다. 모종을 꽂을 때는 두 줄로 했는데 직파를 할 것이라 세 줄로 심을 예정이다. 한 구멍에는 세알씩 넣고 나중에 솎아줄 것이다. 마을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옛날엔 줄뿌림을 했다고 한다. 그 말에 따라 나도 줄뿌림을 해봤는데 풀이 훨씬 빨리 올라와 풀에 치어 버렸다. 내가 게으른 탓이었다. 그래서 작년엔 신문지 덮개를 해서 점뿌림을 했더니 잘 되었다. 신문지 덮개를 쓰면 줄뿌림을 하기가 힘들다. 다만 단점은 북주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작년엔 북주기를 아예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두고 보고 판단하려 한다.
곡우의 비는 서리를 싹 가지고 가는 비다. 서리는 여름 농사에는 가장 큰 장벽이다. 봄 서리가 끝나야 비로소 여름 작물을 파종할 수 있고 가을 서리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 봄 서리는 곡우 때 끝나고 가을 서리는 상강 때 시작한다. 곡우 때 서리가 끝난다고 하지만 중부지방에서는 4월말까지 안심할 수가 없다. 시중에는 벌써 여름 모종들이 장사진을 펴고 있지만 함부로 사다 심으면 좋지 않다. 온난화 날씨로 점점 서리 기간은 짧아지고 있지만 예년 경험으로 볼 때 변덕 날씨로 별안간 추워지는 때가 있다. 제일 안심인 것은 5월초 입하 직전에 심는 것인데 좀 늦다 싶으면 4월 말쯤에 하는 게 낫다. 된서리는 아닐지라도 찬 기운을 받으면 작물이 타격을 받아 건강이 약해져서 병해충에도 잘 견디지 못하고 열매도 부실하다.
직파를 할 경우는 곡우 전에 한다. 싹을 틔우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곡우 지나 발아가 되게끔 일정을 맞추면 된다. 내가 심을 대화초 고추는 발아하는 데 3주 걸리므로 지금 심으면 좀 늦다. 게으른 탓이기도 하고 좀 안정적으로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올해 경험을 잘 살려 내년엔 나답지 않게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입하, 점점 바빠지는 농번기
입하가 되니 이제 냉해에 대한 걱정이 가신다. 이번 곡우에도 영락없이 이상 기후가 찾아왔다. 곡우 전까지만 해도 여름 같은 더운 날씨가 계속 되더니 곡우 지나 내린 곡우 비로 추운 날씨가 닥치고는 영락없이 서리가 내렸다. 원래 곡우 비는 서리를 싹 가지고 가는 비인데 이번엔 거꾸로 마지막 서리를 선사해주었다. 그래서 4월말까지는 절대 냉해를 안심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몇몇 성급한 회원들이 시중에서 고추, 토마토 모종을 갖다 심어 결국엔 피해를 봤다. 참으로 농사는 당해봐야 알고 실패가 참된 스승인 것 같다.
특히 설날이 입춘 뒤에 오는 해의 봄은 입하가 올 때까지 안심해선 안된다. 온난화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 않다. 온난화란 무조건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변덕 날씨가 심해진다고 함께 이해하는 것이 좋다. 마을 어르신이 일러주시기를 음력 3월 20일게 쯤 서리가 내리면 반드시 풍년든다고 했다. 이번에는 음력으로 3월 19일인가 20일 쯤에 서리가 내렸으니 어르신 말씀대로라면 올해도 풍년은 들 것 같다. 변덕 날씨만 잘 피하면 말이다. 이때 서리가 오면 활동하기 시작한 벌레들이 뒤통수 맞아 넉아웃되니 풍년들 수밖에....하긴 밀이 예년에 비해 튼실한 이삭을 패고 있어 조짐이 좋기는 하다.
입하가 되면 이젠 밭의 봄나물들, 그러니까 냉이, 씀바귀, 민들레 들은 이제 꽃도 피우고 씨를 맺고 있어 먹을 게 없다. 그렇지만 실망만 할 일이 아니다. 대신에 명아주, 비름, 질경이 들이 그 뒤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맛있는 풀이기도 하지만 작물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풀이기도 하다. 이때쯤 되면 봄에 심은 작물들은 이 풀들과 경쟁을 하며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바지런한 농부들은 그저 잡초만 매지 않고 이 풀들도 거두어 맛있는 저녁 나물 반찬을 준비한다.
사실 이때쯤이면 조금씩 먹을 게 많아진다. 시금치, 얼갈이, 열무 들도 솎아 겉절이 무치면 군침이 마구 돈다. 7, 8년 전쯤 상주에서 머우 한포기 얻어다 심은 게 얼마나 번졌는지 좀 따다 삶아서 쌈을 해먹었더니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지금이 머우 쌈은 제일 맛이 좋을 때다. 적당히 쌉싸름하면서 그 뒷맛이 참 일품이다. 쌈장으로는 멸치국물에 양념을 다져넣고 참기름이나 들기름 몇방울 떨어뜨려 그것으로 싸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농사를 짓고부터는 이놈들 맛에 익숙해져 점점 고기가 멀어진다. 고기는 먹을수록 고기 분해효소가 많아져 더욱 고기를 당기게 한다더니, 반대로 먹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분해효소가 줄어들어 당기지 않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풀 맛의 진가를 맛보면 고기 맛은 진짜로 저리 가라다. 향기와 아삭한 맛, 그리고 남는 입안의 개운함, 어디 그뿐인가, 속편한 뱃속과 마지막 쾌변까지 선사해주니 여러모로 좋기만 하다.
그런데 이 풀들이 무조건 고마운 것은 아니다. 작물들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때를 그냥 넘기면 작물은 반드시 잡초에 치여 힘을 쓰지 못한다. 열심히 풀을 매주어야 하는 것이다. 풀만 매주면 안된다. 호미로 흙을 긁으며 북도 주고 더불어 반드시 웃거름도 주어야 한다. 모든 작물은 이 작업, 곧 풀매고 북주고 웃거름 주는 작업을 두세번은 해주어야 한다. 농작업의 제일 중요한 기본 작업이라 보면 된다. 이 때 풀 매는 것을 어려운 말로 중경제초라 하는데 이런 말은 몰라도 농사짓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어쨌든 풀을 한번 매주는 것은 거름 다섯 번 주는 것과 같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작업이다. 북을 주는 것은 흙을 작물 포기 주변으로 모아주어 작물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표토를 긁어서 표토에 형성된 모세관을 끊어주기 때문에 그를 통해 날아가는 수분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웃거름까지 마지막으로 주면 작물을 힘차게 자랄 일만 남았다.
요맘때가 되면 잡초만이 아니라 벌레들도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다. 어린 잎과 줄기와 뿌리를 갉아먹는 놈들이 많아진다. 또 봄가뭄이 시작되기 때문에 벌레가 더한다. 작물의 액즙을 빨아먹어 갈증과 요기를 해결한다. 진딧물도 많아지고 배추잎 갉아먹는 무잎벌레, 고추모종 잘라먹는 거세미, 땅 속에는 굼벵이와 땅강아지가 많아져 뿌리와 줄기를 갉아 먹는다. 감자잎 좋아하는 28점 무당벌레도 많아져서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 여기저기 막 나타난다. 그러나 어쪄랴? 농약도 칠 수 없고, 유기농자재는 비싸고 참으로 대책이 잘 보이질 않는다. 천상 목초액이나 액비, 식초나 아니면 담배꽁초 우린 물, 우유, 요구르트 등이라도 써봐야지.
나도 여러 가지 써봤지만 제일 좋은 것은 이런 것을 안쓰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안써도 될 정도로 흙을 잘 가꾸면 절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권하고 싶은 것은 로타리를 치지 않는 것이다. 섣부르게 무경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400평의 작은 밭이라 어렵지 않게 무경운을 실천하고 있지만 많은 평수에 그런 방식을 적용하기란 만만치 않다. 면적이 넓다면 쟁기질을 권하고 싶다. 쟁기질이든 무경운이든 제일 중요한 핵심은 흙의 떼알구조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흙 속과 표토와 지상부를 관통하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한 종이 우점하는 현상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로타리는 흙을 밀가루처럼 만들어 흙에 형성된 다양한 미생물 집, 지렁이 집, 물구멍, 공기구멍을 다 깨뜨려 균형이 깨진다. 생태계에서 균형이 깨지면 개체수가 많은 놈들이 우점한다. 초식들이 대표적이다. 초식벌레는 다 해충이다. 게다가 유기물을 함께 넣고 로터리를 치면 땅 속 벌레들은 신난다. 그 유기물을 먹으러 마구 달려드니 제 세상 만난 것이다.
며칠 전 봉화에 취재 가서 2천5백평을 무로터리, 무비닐로 농사짓는 선배를 만났다. 흙이 얼마나 좋은지 진짜 병해충 별로 걱정하지 않고 농사짓고 있는 분이었다. 거름도 집에서 나오는 똥오줌과 음식물 등의 자가퇴비로 쓰고 있었다. 그런 흙에서는 병충해만이 아니라 마늘과 양파를 전혀 보온 대책을 취하지 않고 그냥 흙에 심었는데도 겨울을 거뜬히 넘겨 지금은 풍년을 기약하며 힘차게 자라고 있다. 살아있는 비옥한 흙은 추운 겨울의 동해도 막아주는 것이다.
입하가 되자 작년에 심은 밀이 본격적으로 이삭을 패고 있다. 나는 입하 전, 그러니까 4월말에 밀 사이에 골을 괭이로 타서 밭벼를 심었다. 이른바 사이짓기다. 골에다 30센티미터 간격으로 볍씨 2~30알을 점뿌림하고는 완숙된 퇴비로 덮어주었다. 이때쯤이면 봄가뭄이 들어 씨앗이 발아하기 힘들다. 그러나 다 자란 밀 사이는 덜 건조하여 싹 나는 데 유리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반은 밀 사이짓기로 밭벼를 직파하고 나머지 반은 200구 짜리 포트에다 모종을 길러 모를 냈는데, 역시 모종 낸 것보다 직파한 게 더 나은 것 같았다. 이번엔 방식을 바꿔 둘 다 직파를 하되 하나는 4월 말 밀 사이짓기로 직파하고 하나는 장마 직전에 밭에 풀매고 고랑 내어 그냥 심을 계획이다.
이번엔 이웃과 함께 30평 되는 논을 만들었다. 그리고 토종 볍씨를 뿌렸는데 역시 직파 점뿌림을 했다. 토종 벼는 사람 허리 이상으로 커서 꼭 쓰러지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직파를 해서 직근을 깊게 내리게 하여 지상부를 적게 크게 하면 쓰러짐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줄뿌림이나 흩어뿌림이 아닌 밀식으로 점뿌림을 하면 볍씨들이 서로 부대끼니 뿌리를 밑으로 깊게 내린다. 싹이 나면 한번 풀을 매주고 물을 댈 계획이다. 일종의 건답직파를 하고 무논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이 어느정도 차면 우렁이를 넣어 제초를 맡기려 한다. 제대로 계획대로 될지 자못 기대가 되는 실험이다. 이래저래 입하가 되니 농번기가 참으로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마음이 들떠있어 기분은 좋다.
소만(小滿), 작은 여름날의 꿈
소만(小滿)은 점차(小) 만물이 생장하며 가득 찬다(滿)는 뜻이다. 곡우, 입하까지만 해도 산야에 연녹색의 기운이 꿈틀거리더니 어느새 신록이 힘차게 올라와 온 세상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다. 곡우 비가 오고 나면 입하 지나 가뭄이 찾아온다. 이 가뭄은 마치 하지 이후 찾아오는 장마를 불러들이는 전야인 것 같다. 장마를 끌어들이기 위한 공간 비우기라고 할까? 비워야 채워지듯이 말이다. 가뭄이라고 하더라도 만물이 자랄 것은 다 자란다. 산 속 나무들도 새순이 어느새 신록으로 변하여 이제는 나무들의 개성들이 파랭이들로 다 가려져버린다. 온통 파랄뿐이다. 게으름 피우다 고추를 곡우 지나서야 겨우 직파했다. 제대로 한다면 청명 지나 바로 해야 하는데 날씨도 이상 저온이 지속되어 그 핑계로 하루 이틀 미뤘더니 그렇게 되었다. 늦었다고 마른 땅에 그냥 뿌릴 수 없어 마냥 비만 기다리다 곡우 이틀 뒤에 비 온다기에 이왕 늦은 것 비에 맞춰 심어야지 했다.
비는 잘 맞추었는데 비가 오고 나더니 늦서리가 찾아왔다. 보통 곡우 비는 서리를 가져가기 마련인데 이건 완전히 거꾸로 되었다. 늦게 심은 것도 억울한데 서리까지 왔으니 참으로 하늘은 게으른 농부를 도와주질 않는다. 이번 늦서리는 일선 농가에 냉해를 많이 입혔다. 감자 싹도 동상을 입혔고 일찍 밭으로 나간 여름 작물 모종들도 피해를 입혔다. 나는 항상 텃밭 회원들에게 입하에 모종을 내라 하는데 이를 듣지 못한 신입 회원들이 시중에 벌써 나온 모종들을 보고는 조급증이 발동하여 피해를 보았다.
올 봄 날씨만큼 변덕스런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사흘 전에는 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봄 잠바를 입고 있어도 으스스 했다. 다음날 괴산에서 농사짓는 선배를 만났더니 그곳엔 서리까지 내렸다고 한다. 이른 봄에는 여름 날씨처럼 더워 모종 내기를 서두르게 만들더니 게으름 덕에 냉해를 보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머쓱하게 만든다. 하여튼 그렇게 심은 고추가 추운 비를 맞고부터는 전혀 비가 오질 않았는데 스스로 싹을 틔웠다. 참으로 기특했다. 직파하여 스스로 싹을 틔운 놈을 보면 그 기운이 남다르다. 확실히 모종 키울 때 강제로 싹 틔운 놈하고는 색택이나 자태가 자못 다르다. 잡초와 같은 야생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봄 가뭄이 심하면 보리나 밀 이삭이 잘 익을지는 몰라도 감자나 마늘, 양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땅 속의 열매를 영글게 하려면 물이 아주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추나 상추 등 잎채소들도 물이 절실하다. 그런데 입하 이후 비가 자주 오면 상황은 역전된다. 이 시기에는 그냥 적당히 조금 오는 게 좋다. 며칠 전 일요일에 온 비는 그래서 아주 단비였다. 모든 갈증을 다 해갈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소만 다음날 오늘 아침 일기에 예보에 비가 온다고 하더니 진짜로 하늘이 꾸물꾸물 거려 금방 비올 듯 했다. 진짜로 비가 오면 이 비는 귀찮은 비 일뿐이다. 저번 비로 충분하여 이젠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비가 오면 일손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만은 만물이 점차 생장하는 시기이므로 이에 농사도 발 맞춰 나가야 한다. 벼 모판에도 모들이 힘차게 힘을 받아 올라온다. 작년 가을에 심어둔 밀, 보리의 이삭도 익어가기 시작하고 이른 봄에 심어둔 잎채소들도 빠른 것은 솎아 먹을 정도가 되었다. 나물들도 봄에 꽃을 피운 것들은 열매를 매달아 익히고 있고, 여름 빨간 꽃들이 녹색의 잎사귀 사이사이에서 불긋불긋 피워나기 시작한다. 밭 둘레에는 찔레가 꽃보다 먼저 진한 향내로 인사를 한다. 아침 저녁에는 찔레의 진동하는 향내로 취할 것만 같다. 오늘 밭에서 만난 한 회원은 밭에 일찍 도착했더니 찔레향이 차 안으로 막 쏟아져 들어오더라고 감탄을 연발한다. 찔레향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말이 참으로 적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벼 모내기는 망종 근방에 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엔 소만쯤이 되면 대부분 모를 낸다. 논에 나가보면 이앙기로 모들 내느라 정신이 없다. 옛날에 비해 모를 빨리 키우기도 하거니와 이앙기로 모내기 적당하게 어린 치묘(穉苗)를 모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또 천수답이 아니라 다들 지하수를 모터로 끌어내 논물을 담으니 물 걱정도 없어 일찍 모들을 낸다. 그러다보니 여러모로 벼가 건강하게 자라는 데 어려운 점이 생긴다. 비유하자면 미숙아를 일찍 젖 떼어 스스로 크라고 하는 셈이다.
그래서 요즘 유기농가에서는 옛날처럼 성묘(成苗)로 키워 모를 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성묘로 모를 내면 건강한 모를 날씨도 충분히 따뜻할 때 모내기하게 되고 또 물도 깊게 될 수 있어 보온에도 유리하고 물을 이용한 제초에도 유리하다. 게다가 자운영을 녹비 작물로 재배할 때 늦게 모내기 하면 자운영씨가 절로 떨어져 가을에 따로 파종하지 않아도 될 것을 방금 코투리가 달린 것을 갈아엎어버리니 가을에 다시 씨를 사다 넣어주어야 한다. 자운영 씨를 매년 그렇게 사오는 돈이 자그마치 몇십억원어치나 된다고 한다.
소만 절기에 꼭 놓치지 말아야 할 농작업에는 풀매기가 있다. 풀은 다른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해 더욱 힘차게 생장을 거듭한다. 이른 봄에 나온 잡초들은 벌써 씨를 맺기 시작한다. 꽃다지, 냉이, 소리쟁이, 명아주, 보리뱅이 등. 이 때 잡아주지 않으면 풀씨도 맺혀 내년에 더 많이 풀이 발생하기도 하거니와 장마 근방에 가서 잡아주려 하면 힘이 몇 배 더 든다.
풀매기와 함께 더불어 작물에게는 북주기를 꼭 해야 한다. 북주기는 풀제거와 함께 작물을 북돋아주는 효과도 있지만 보이지 않게는 가뭄 예방 효과도 있다. 흙에는 무수한 모세관이 연결되어 있어 흙 속의 습기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 건조를 촉진한다. 그런데 호미나 괭이로 북주기를 하면 이런 모세관을 끊어주어 건조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주기는 일타삼피 효과, 그러니까 일석삼조 효과가 있는 셈이다. 열심히 북주기를 할 때다. 북주고 나서는 꼭 오줌 등으로 웃거름 주는 것을 잊지 말자.
망종(芒種)-풀과의 싸움이 시작되다
이제 풀이 지긋지긋해지는 때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 다 먹을 것으로 보이던 놈들이 이제는 작물을 망치고 농부의 육신을 피로하게 만드는 놈들로 변했다. 소리쟁이, 명아주, 비름, 질경이, 고들빼기, 둑새풀 등등... 그래도 향내 진한 꽃이 농부의 피로를 살짝 덜해준다. 찔레꽃의 향이 지나더니 밭 한 구석에 심은 떼죽나무 꽃이 만발하여 그 향이 망종이 다되도록 그칠 줄 모르게 진동을 했다.
5월 5일 입하 절기에 맞춰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 날로 정한 것을 보면 그 분은 분명 절기나 농사를 알았던 듯하다. 입하가 지나면 만물이 어린이 자라듯 쑥쑥 커간다. 그에 맞춰 밭의 풀들도 힘차게 쑥쑥 자라 올라온다. 이 풀을 장마 전에 잡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장담하지 못한다. 힘들더라도 망종 근방에서는 모든 풀을 다 매주어야 한다. 그리고 장마 지나 한 번 더 매 주어야 풀 대책이 확실하게 설 수 있으니 망종 때쯤 풀을 다스리지 못하면 실농(失農) 가능성이 더 높아질 뿐이다.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 유독 변덕이 심해 아직 장마가 오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장마철처럼 비가 많이 온다. 우리 바람들이 농장의 막내 농부 김석기가 올해 무자년 날씨를 예측했듯이 기습 호우와 한파가 오락가락 한다더니 그 말 그대로다.(텃밭보급소, 도시경작, 14번 “무자년을 꼽으며” 참조) 이른 봄에는 여름날처럼 덥고 건조하여 여기저기서 산불이 나고, 곡우가 지났는데도 늦서리가 두 번이나 오질 않나, 입하 지나면 오기 마련인 가뭄 대신에 한여름 장마처럼 비가 자주 온다.
때늦은 한파에 냉해를 입고, 때 이른 잦은 비에 풀이 드세다. 강낭콩, 완두콩 밭 사이에 사이짓기로 밭벼를 심으려 풀 매러 갔더니 벌써 작물들을 위협할 만큼 풀들이 자라있다. 풀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자랐다. 그나마 밀 사이의 풀은 훨씬 덜하다. 밀이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풀이 끼어들 틈이 별로 없어진 때문이리라.
망종(芒種)은 까끄라기 망(芒)이 있는 작물을 거두거나 모내기 하는 철이다. 곧 밀, 보리와 같은 작물을 거두고 벼를 모내기 하는 철인 것이다. 산에서는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고 밭 근처에는 어서어서 모내기 하라고 오동나무꽃, 이팝꽃, 찔레꽃, 떼죽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망종 근방에는 우리 겨레의 제일 큰 명절인 단오(端午)가 있다. 음력으로 5월 5일이다. 단오는 4대 명절(설날, 추석, 한식, 단오) 중에 유일하게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지 않는 마을 축제다. 대신에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현재까지 내려오는 대표적인 마을 제사로는 강릉단오제가 제일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해와 달을 숭배하는 농경민족이었는데, 달을 숭배하는 잔치가 대보름이라면 해를 숭배하는 잔치가 바로 단오다. 홀수가 겹치는 날짜는 양의 기운이 승한 날인데 특히 음력으로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이 더욱 양기가 배가는 되는 날이다. 이중에서 5월 5일이 제일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친 것이다. 곡물 중에서도 양기가 센 벼를 이 때 모내기 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단오는 모내기를 위한 벼농사 축제라 할 수 있다. 단오를 기점으로 모내기를 시작하여 본격적인 여름 농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단오 전에 모내기를 끝내 단오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단오 때 잔치를 하고 이후 모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마을 두레 회의를 열어 벼 모내기 순서를 정한다. 두레 농악패도 조직하여 흥겨운 잔치를 만든다. 벼 모내기 두레는 철저히 이타적인 공동체 방식이다. 보통은 지주의 논을 제일 먼저 모내기 하고는 마을에서 모내기하기 제일 어려운 논부터 시작한다. 예컨대 몸 불편한 노약자, 과부 등의 논을 먼저 모를 낸다. 말하자면 내것, 네것 가리지 않고 마을의 모든 논을 내 논처럼 여기며 모를 내는 것이다.
반면 품앗이라는 공동체는 이기적인 방식이다. 내가 도움 받은 만큼 돌려준다. 노동력이 적은 사람에게 이틀 도움을 받았다면 노동력이 멀쩡한 사람은 하루만 도와주면 되는 식이다. 소를 빌려와 하루를 일을 해주었다면 건장한 총각의 노동력으로 3일은 일을 해주어야 되갚음이 된다. 그만큼 소의 노동력이 대단했던 것이리라. 두레는 주로 벼농사, 논농사에 적용이 되었다면 품앗이는 주로 밭농사에 적용되었다.
우리의 마을 공동체는 이렇게 일방적인 이타적 방식만을 추구한 게 아니라 이기적 방식도 적용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지 않았나 싶다.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이타적이기만 해서도 안되고 이기적이기만 해서도 안되니 적절한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단오날에는 수리취떡이나 각종 백가지 나물을 해먹는다. 단오가 되면 이런 나물을 해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단오 즈음이면 꽃대가 올라오거나 쇠져서 나물을 먹을 수가 없다. 또한 단오가 지나면 덥고 습한 장마철이 오기 때문이 식중독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고자 쓴 나물을 먹은 뜻도 있다.
단오 즈음이면 궁핍한 보리고개가 절정이다. 춘궁기의 마지막인 것이다. 단오가 지나면 밀, 보리도 수확할 수 있고 이른 봄에 심은 잎채소들도 먹을만큼 자라있다. 그럼 단오 전에는 무얼 먹고 살았을까? 작년 거두었던 식량도 바닥이 나고 묵나물, 김장김치도 동이 났다면 먹을 게 없으니 보리고개는 봄에 반드시 겪어야 할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였다. 그 높은 고개를 힘들게 넘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들나물, 산나물 들이었다. 시고, 쓰고 질기기만 한 나물들이다.
그런데 사시사철 항상 배부르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에는 수확의 계절이라 그러지 않아도 먹을 게 많다. 많이 먹어 추운 겨울을 나야 한다. 동면에서 깨어나 봄을 맞이하면 세상엔 먹을 게 하나도 없다. 지난 가을에 쟁여둔 광에도 먹을 게 떨어졌다. 그 때 먹는 게 바로 나물들이다. 요즘엔 웰빙식이다 해서 옛날 가난한 음식이 인기를 끄는 시절이 되었다. 그 가운데 곤두레 밥이라 하면 가난을 최고로 상징하는 강원도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곤두레라는 산나물을 주재료로 하고 귀한 곡식 보리 몇 알, 그리고 나머지는 물과 된장 풀어 죽을 해 먹은 것이다. 그런데 사실 봄에는 이런 시고 쓴 나물을 먹어주어야 무덥고 뜨거운 한여름을 이겨나갈 수 있다. 천고마비의 가을처럼 봄에도 배 터져라 먹는다면 과연 여름을 견뎌낼 수 있을까?
단오는 대단한 마을 잔치였다. 그 자체가 공동체였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지켜가는 가장 큰 잔치였다. 조선 시대에는 이런 백성들의 공동체 문화가 보장되었지만 식민지 시대가 되자 일본 사람들은 이를 불안해했다. 지배의 관점에서 볼 때 백성들의 공동체는 저항의 기반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일제가 만주 전쟁을 일으키고는 조선을 전쟁의 전면적인 동원체제로 재편하면서 단오도 강제로 없애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사라진 명절이 되고 말았는데 일 부지역, 곧 강릉과 같은 곳에서 단오 축제를 이어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망종은 까끄라기 곡식의 철이다. 거둘 것은 거두고 심을 것은 본격적으로 심는다. 벼에서부터 수수, 조, 기장, 콩, 옥수수, 고구마 등을 심는다. 급한 사람은 5월에 다 심었지만 새들의 공격에 그대로 당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철을 잊고 뭐든지 일찍 심는 게 대세가 되어버렸다. 철을 잊으면 작물도 덜 건강하게 자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밭벼 일부를 밀 사이에 심었지만 작년과 달리 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밀 사이를 뒤지며 볍씨를 까먹었다. 그래도 많이 사라나 싹이 나있다. 나머지는 새의 산란기를 피해 심으면 새 피해가 덜하다 하여 망종 즈음에 심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남들은 다 심었는데 나마 늦게 심으려니 왠지 은근히 걱정이 인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 하루라도 빨리 풀을 매어 곡식들을 심으려 한다. 게으른 농부가 오히려 덜 손해를 본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하지(夏至), 장마의 시작
하지에는 망종 때 못한 밀, 보리 수확과 마지막 모내기를 한다. 예전엔 “하지 전삼, 후삼”이라 해서 하지 근방에 마지막 모내기를 하곤 했다. 보통은 망종 전후해서 모내기를 하는데 장마 전 가뭄이 길어지면 하지 즈음해서 찾아오는 장마 직전에 모내기를 한 것이다. 만일 하지가 되었는데도 비 올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으면 대체 곡식으로 메밀을 심거나 조를 심기도 했다. 이래저래 하지가 되면 장마에 대비하랴 혹시라도 있을 가뭄에도 대비하랴 연 중 제일 바쁜 농번기철이다. 옛날엔 뽕잎 따다 누에도 치랴, 밭에서는 풀들이 힘차게 자라 풀도 매랴, 좀 지나면 감자도 수확하랴 일이 보통 많은 게 아니다.
나도 어제 밀 수확하고 바로 마늘, 양파도 수확했다. 감자는 일주일 정도 더 있다가 수확하기로 했다. 강원도에서는 하지에 수확한다고 하여 하지 감자라 하지만 여기서는 하지에 수확하기에는 감자가 아직 덜 영글었다. 물이 많이 필요한 때라 약간 장맛비를 맞추고 잠깐 비가 갠 사이에 캐려고 한다. 그런데 아직 콩, 수수를 심지 못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은 진짜 콩밭에 가 있다. 옛날엔 보리를 많이 심었지만 지금은 보리를 찧을 데가 없어 대신에 밀을 몇 년째 심고 있다. 밀은 탈곡하면 바로 겉껍질이 벗겨져 현미처럼 먹을 수 있어 좋다. 방앗간에 가서 밀가루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정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무튀튀하고 푸석푸석하지만 구수한 맛이 아주 좋다. 전 부쳐 먹으면 더 좋다.
밀 사이에는 곡우 지나 뿌려 놓은 밭벼가 세치정도 자라있다. 이른바 사이짓기다. 일주일 전에는 밀 사이에 서리태를 심었다. 새들의 산란기인 5월이 지나면 새 피해가 덜 하다 하여 6월 초에 심은 것이다. 작년엔 5월말쯤 똑 같이 밀 사이에 심었다. 그런데 발아율이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작년이 더 좋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산란기가 지났다 해서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은 아닐 터이니 너무 방심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현재 판단으로는 서리태 심고 비가 별로 오질 않아 발아가 늦은 탓도 크지 않았나 싶다. 최대한 발아 속도를 빨리 하여 떡잎에서 속잎까지 나오게 해야 할 것 같다. 떡잎까지는 잘라 먹지만 속잎이 나오면 이제는 새가 건들지 않기 때문이다. 밀을 거두고 난 자리에다가는 늦콩, 곧 그루콩을 직파할 계획이다. 이번엔 장맛비가 자주오니 발아 속도를 빨리 하는 전략에 지장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밭벼 사이짓기는 대성공이다. 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짓기가 아닌 맨 밭에 직파했을 때 비하면 거의 풀이 없는 셈이나 다름없다. 그냥 직파하면 눈을 부라리고 무성한 풀 속에서 벼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가면 풀도 두세번 매주면 충분할 것 같다.
밀 사이에 콩과 벼를 심는 이른바 사이짓기는 전통농법이다. 그동안 전통농법을 찾아 취재도 다니고 실험도 하면서 최종적으로 얻은 결론이 사이짓기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짓기 점뿌림 직파법이다. 특히 밀이나 벼 같은 경우는 점뿌림할 때 콩처럼 세알정도 넣는 정도가 아니라 30알 이상씩 듬뿍 넣는다. 그렇게 하면 너무 씨 낭비가 심한 것 아니냐 하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점뿌림하기 전에는 주로 줄뿌림을 했는데 오히려 씨가 반밖에 들지 않았다. 줄뿌림할 때는 씨 간격을 1센티미터 되게끔 뿌리다보니 더 씨가 많이 드는 반면 발아율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그러다 어느 지방에 가서 오래 농사지으신 한 어른신께 점뿌림해야 한다는 얘길 듣고 작년 가을에 밀을 그렇게 심었다. 그랬더니 씨도 적게 들거니와 발아율이 아주 좋았다.
점뿌림을 하면 발아율이 좋은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씨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보온이 잘된다. 발아하며 생기는 발아열이 옆에 붙은 씨의 발아를 촉진시켜주는 것이다. 엿기름 만들 때 보리나 밀 씨를 싹을 틔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싹틀 때의 그 온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냥 놔두면 고온의 발아열로 밀 싹들이 망가질 수 있어 찬물을 계속 끼얹어주어야 할 정도다. 또 많은 씨를 점뿌림하면 서로 밀착되어 있다 보니 밑으로 뿌리를 깊게 내린다. 뿌리를 깊게 내리면 뿌리의 힘이 좋아 나중에 위로 싹을 밀어 올리는 힘도 좋아진다. 그러나 너무 많은 씨를 넣었기 때문에 나중에 솎아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나도 밀싹이 무성하게 난 것을 보고 저러다 일일이 솎아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보니 적당히 자기들끼리 균형을 잡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확하면서 보니 오히려 씨가 많이 들어간 포기들이 더 튼실하고 이삭도 많이 달렸음을 알 수 있었다.
밀 사이에 뿌린 밭벼도 마찬가지다. 마을 아저씨가 도와준다고 같이 파종했는데 나처럼 씨를 많이 넣지 않았다. 보통 오래 농사지은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도와주는 분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어 놔두었더니 역시 내 예측대로 적게 넣은 쪽은 발아가 그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
밀 사이만이 아니라 완두콩, 강낭콩 사이에도 밭벼 씨를 넣었다. 당연히 뭉텅이로 씨를 넣었더니 아주 발아가 잘되었다. 콩 밭 사이에 넣으니 거름도 아낄 수 있어 좋다. 사실 완두, 강낭콩은 아예 거름조차 넣질 않았다. 작년에 배추 심었던 곳이라 그리 했다. 그러나 밭벼는 웃거름을 줄 계획이다. 그러나 밑거름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만 갖고도 나에게는 공짜 농사나 다름없다. 밀이나, 벼를 사이짓기 할 때도 밑거름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밭에 밀이든 벼든 곡식이 심겨져 있으니 밑거름을 전면 시비할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씨를 점뿌림으로 넣고는 거름으로 복토를 하는 것이다. 단 완전히 숙성되어 흙처럼 된 거름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거름 피해가 없다. 그것으로 밑거름은 끝이다. 그리고 자랄 때 웃거름으로 오줌을 두 번 뿌려 준다. 거름을 밭 전면에 시비 하지 않고 과녁을 정해서 주니 거름 손실이 거의 없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정리를 하면 사이짓기 점뿌림 직파법의 장점은 풀을 덜 매고, 거름도 아끼며 땅을 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곡식이 항상 심어져 있으니 땅을 갈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사이짓기 점뿌림 직파법을 우리가 살려야 할 전통농법의 백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사이짓기에서는 꼭 콩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콩은 스스로 거름을 만드는 곡식이라 땅을 비옥하게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사의 성격을 가장 크게 결정짓는 기후의 특징은 장마다. 장마철을 어떻게 대비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한해 농사 전략의 최대 과제다. 장마가 우리 농사를 규정한 가장 큰 특징은 논과 곡식 농사다. 일 년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장맛비에 피해보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 잘 크는 것들이 벼와 곡식들이다. 그러나 채소들은 장마에 맥을 못 춘다. 고추 같은 경우는 장마 지나면 꼭 탄저병이 역병과 함께 찾아온다. 오이도 노균병 같은 게 찾아와 한꺼번에 몰살되는 경우가 많다. 여름을 나는 과실채소들이 다 그렇다. 그래서 장맛비를 피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설치한다. 도시 근교와 우리 시골을 볼썽사납게 만들고 있는 수많은 비닐하우스의 물결도 다 이 때문이다. 밥상에 채소가 그만큼 늘었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육식이 는 것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장맛비가 무서워 벼를 비닐하우스에다 재배하는 경우는 없다. 다른 곡식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장맛비를 논에 가두어야 벼가 쑥쑥 큰다. 벼도 크지만 엄청난 비를 논에 가두니 홍수 피해도 막아준다. 일석 몇 조나 되는 효과다.
곡식 위주의 이런 농사는 그대로 우리 밥상에도 반영되어 곡식 위주로 고봉밥을 먹고 살았다. 하지 지나면 장마도 문제지만 무더운 더위도 문제다. 고온다습한 우리의 여름은 곡식을 잘 자라게 해 줄지는 몰라도 사람 건강에는 별로 좋은 환경이 못 된다. 식중독 같은 전염병이 좋아하는 환경인지라 먹을 것도 조심해야 하고 과로와 스트레스도 조심해야 할 때다. 기름 도 비싸진 요즘 돈 들여 힘 들여 놀러가기보다 흙냄새 풀냄새 물씬 나는 논밭에서 땀 흘려 일한 후 시원한 막걸리 한잔으로 여름을 이기는 것도 좋은 피서법일 것 같다.
소서, 끝없는 고온다습의 시작
이제 본격적인 여름철이다. 장마와 무더위가 함께 찾아오는 철이다. 요즘처럼 마른 장마라 해도 날은 습하고 덥다. 일도 많고 날은 무더워 건강을 최대한 주의할 때다. 다행스러운 것은 보리 고개를 지나 이제는 먹을거리가 풍부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망종, 하지 때 수확한 밀, 보리도 창고에 가득하고 밭에서는 늦봄, 초여름에 심은 과일 채소들이 먹을 만큼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밀, 보리는 겨울을 나는 작물로 대표적인 음(陰)한 음식들이다. 뜨거운 양의 계절인 여름에 먹으면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양식들이 소서 때가 되면 맛이 아주 좋을 때다. 게다가 밭에서 나는 각종 채소 과일들이 농부의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때는 결코 놀고먹는 때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년 중 제일 바쁜 농번기다. 하지 무렵에 모를 낸 논에는 본격적으로 피가 자라 피살이를 해야 하고, 밭에도 무섭게 풀이 자라기 때문에 한눈 팔 틈이 없다. 하지 무렵 벼를 모내고 나서 바로 심는 콩, 팥, 조, 수수 등 곡식들은 소서 때가 되면 풀을 매주어야 한다. 6월 초 아직 거두지 않은 밀밭 사이에 서리태를 심었다. 이 씨앗은 경북 청송에 가서 구해온 이른바 귀족서리태라는 콩이다. 여느 서리태와 달리 쭉정이도 적고 메주콩처럼 단정하게 자라고 감자 그루작(후작後作)으로 심을 수 있는 콩이다. 맛도 비린내가 적어 뛰어난 편이다. 그런데 작년에 똑 같이 밀 사이에 심은 메주콩에 비해 새 피해가 컸다. 반은 넘게 쪼아 먹었다. 흙 속에 들어간 콩 씨앗을 먹는 게 아니라 싹이 난 떡잎을 쪼아 먹는다. 그러니까 비 예보를 잘 들었다가 비 오기 직전에 심어 빨리 속잎까지 발아되도록 해야 한다.
제일 좋은 것은 장마 때 심는 것이다. 그루작으로 잘 되는 것이면 더 좋다. 경험적으로 볼 때 비를 한번 맞는 것 갖고는 부족하다. 파종하고 바로 비 맞고 3~5일 지나 한 번 더 비를 맞아야 좋다. 이번엔 특히 밭벼와 옥수수, 동부의 파종이 정확히 그 일정에 들어맞았다. 이 녀석들을 파종하고는 바로 비가 오더니 한 3일 후쯤 또 비를 맞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싹을 내밀지 않았는데 오후의 비를 맞고나서 다음날 가보니 일제히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루작으로 메주콩을 요번엔 밀 수확하고 나서 그 자리에 심었다. 사이짓기를 못한 것이다. 혹시나 또 새들이 먹어버릴까 우려되어 내 나름대로 작전 짜기를 오줌에 버무린 톱밥으로 복토를 한 것이다. 살짝 흙으로 덮고 그 위로 한주먹 톱밥을 덮고 또 그 위에 풀 한줌으로 위장을 했다. 말로 하니 복잡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우선 딸깍이(귀농1호라는 풀 제초기)로 풀을 다 매고 나서 한 번에 괭이로 심을 구멍을 내고 또 한 번에 콩 씨앗을 구멍마다 세알씩 넣었다. 그리고 오줌에 버무린 톱밥을 양동이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목발로 흙을 살짝 덮어주고는 그 위에다 톱밥을 덮고 또 괭이로 구멍 팔 때 사이사이에 준비해둔 마른 풀을 목발로 슬쩍 덮어준다. 사실 딸깍이로 풀 매는 데 시간이 제일 많이 걸렸지 구멍파고 파종하는 것은 그에 비하면 순식간에 해 치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파종했더니 다음날 비가 장맛비가 내렸고 4일 뒤에 또 비가 내렸다. 속성 발아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파종 후 일주일 뒤에 가보니 빠른 것은 속잎까지 발아가 되고 있었다. 새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다행히 서리태에 비해서는 훨씬 덜했는데 대략 20%는 떡잎을 잘라먹은 것 같았다. 잠깐 옆밭에서 들깨 모종을 심고 있는데 까치 한 마리가 콩밭을 서성이는 게 보였다. 가보니 그새 또 콩 떡잎을 잘라먹은 것 같다. 산란기인 5월이 지나면 덜 먹는다 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구는 6월이 되면 산에 먹을 게 많아 밭의 콩을 덜 먹는다고도 했지만 요즘엔 산이 우거져 먹을 것을 구하기가 옛날 같지 않아 여전히 콩을 공격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목초액이 그때서야 떠올랐다. 얼른 분무기에 목초액 100배로 희석한 물을 담아 가져와 싹들에 뿌려주었다. 다음에는 톱밥을 오줌으로만 버무리지 말고 목초액으로도 함께 버무리고, 뿐만 아니라 콩 씨앗도 목초액 희석한 물에 담갔다 심어야겠다고 단단히 다짐을 했다.
새가 잘라먹은 서리태 빈 자리에다가는 수수를 심고 완전히 삭은 거름으로 복토를 해주었는데 기대한대로 싹들이 아주 잘 올라왔다. 그래서 다음엔 아예 콩과 수수를 섞어서 심는 것도 궁리해보기로 했다. 목초액을 처리했을 경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안 먹지는 않을 것 같고, 같이 심은 수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면 절로 섞어짓기도 되니 땅의 효율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른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내 생각엔 늦봄, 초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때 가뭄이 와야 그것을 메우려 장마가 확실하게 올텐데 가물지 않으니 장마도 별로 힘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이상기후 현상이라 볼 만도 한데 무조건 이상기후라 하면 괜히 마음만 불안해져서 나는 별로 그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늘 기후가 똑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덜할 때도 있고 더할 때도 있는 법이니 호들갑 떨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마른 장마라 하지만 후덥지근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하도 더워 물 한번 쫙 끼얹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물이야 언제나 고마운 존재이지만 요맘 때 물은 더더욱 고마운 님이다.
소서 때 찾아오는 음력 명절로는 음력 6월 15일 유두(流頭)날이 있다. 말 그대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씻는 명절이다. 이 시절 산이나 바다로 놀러가는 피서 문화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유두날은 우리말로 물맞이라고 한다. 흐르는 물에 머리를 씻고 유두음식을 먹으면 더위를 덜 타고 여름을 잘 날 수 있다 했다. 유두음식으로는 밀국수와 햇과일이 있다. 밀국수는 얼마 전 수확한 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으니 자연히 제철 음식이다. 밭에서는 참외, 수박, 오이 등 막 맺히기 시작하니 햇과일도 풍부할 때다. 게다가 이치에 맞는 것이, 밀은 대표적인 음 기운의 음식이므로 뜨거운 여름에 먹기 좋고 과일 자체도 뜨거운 여름 햇빛을 받고 자라지만 그 속에는 찬 기운을 머금고 있으니 여름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
어릴 때 뜨거운 여름날 퇴계원에서 농사짓던 고모네 놀러 갔다 여름 햇살을 내리 쬔 수박을 밭에서 그냥 깨뜨려 먹었을 때 얼마나 시원했던지 참으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 그뿐이랴. 오이를 채 썰어 시원한 물에 먹던 오이 냉국, 또 오이를 소금에 절여 먹던 오이지, 부추와 함께 버무려 만든 오이소박이 등이 이 시절 여름을 잊게 해주는 제철음식들이었다. 참 이렇게 생각해보면 냉장고도 꼭 필요한 기계라 생각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냉장고 없으면 항상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냉장고 때문에 오히려 오래된 음식을 먹거나 철을 잊어버린 음식들을 먹게 된다. 내일 또 밭에 가서 마무리 못한 풀매기를 마저 해야 할 생각을 하니 좀 지겹기는 하지만 땀 흘린 후 먹을 막걸리를 생각하니 약간은 마음이 설레인다. 날이 밝으면 어서 풀매러 밭에 가야지...
대서, 고온다습한 무더위의 절정
올해는 마른 장마라 하지만 적당히 내릴 비는 내린 것 같다. 다만 열대야와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것이 이번 더위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열대야가 일찍 찾아오니 또 사람들은 온난화를 걱정한다. 과일나무 북방한계선이 북상하고 동백나무, 차나무가 중부지방에도 월동을 하는 등 심상치 않은 온난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도 또한 자연스런 현상 중에 하나이겠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는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와 사람 살기에 큰 지장을 가져올 수 있다. 올 봄, 때 아니게 여름 날씨처럼 더운 날이 일찍 오는가 싶더니 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늦서리가 5월까지 내려 농부의 마음을 당혹스럽게 한 것도 기후 변동의 징후일 것 같은 우려를 갖게 했다. 다만 안산에서 농사짓고 있는 김석기 씨의 올 초 무자년 날씨 예측을 보며 온난화라 하지 않아도 옛 조상들은 이런 날씨를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온난화 불안감을 위안하고자 한다.
“무자년은 땅과 하늘에 화기火氣가 강한 해입니다. 천간의 무戊라는 기운과 지지의 자子라는 기운이 모두 화기火氣를 불러옵니다. 그런 만큼 무자년의 기상은 일반적으로 온도가 높고, 기상 변화가 심해 예측하기 어려운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온도가 높은 만큼 갑자기 한파가 몰아닥칠 수도 있고, 증발량이 많아 게릴라성 호우 또는 폭설이 잦을지도 모릅니다.”(08년 2월 4일)
이 예측이 있고 나서 숭례문에 불이 나질 않나, 올 해 상반기 내내 촛불로 밤하늘이 밝혀진 것을 보며 그것 참 신통하다 했다. 농담으로 거리에 돗자리 깔아야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얘기 나온 김에 잠깐 옆으로 새면, 작년 대선 다음날 한 천문학자가 전혀 정치와 무관하게 주목할만한 천문현상으로 화성이 가장 지구에 근접해 밤하늘에 밝게 빛나고 있다 했다. 화성(火星)은 글자 그대로 화(火) 기운을 대표하는 불의 별로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서양에서도 mars라 하여 동양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신이며 장군의 별이다. 이 별이 가장 근접하여 빛나고 있다니 아무리 봐도 이번 대통령은 화성의 기운을 받은 사람일 것 같아 영 찜찜했다. 아무튼 올 봄 여름처럼 무덥다가 늦게 서리가 내려 고추 같은 여름 작물에 냉해를 입히더니 대서가 지나야 찾아오는 열대야가 소서 때부터 들이닥쳐 여름을 더 힘들게 한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삼복(三伏) 더위라 한다. 그런데 복날은 음력도 아니고 절기력도 아닌 간지력(60갑자력)이다. 갑자력 10간(干) 중 경(庚) 일이 하지 이후 세 번째 오는 날을 초복, 네 번 째 오는 날을 중복이라 하고 말복은 입추 이후 첫 번째 오는 경일이다. 경(庚)은 오행 중에 금(金)으로 가을을 뜻한다. 말하자면 해는 하지를 지나 가을로 가고 있는데 지구는 복사열로 달궈져 화기운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러니까 가을 기운인 경(庚)이 아직 땅에 강하게 남아있는 화 기운이 무서워 숨는다(伏)는 뜻이다. 사람 인(人) 변에 개 견(犬)자 붙어 있어 개고기를 먹는 개 복자가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숨을 복(伏)자다.
복날 개고기를 먹는 것은 옛날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충재(蟲災)를 예방코자 개를 잡아 먹었다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복날엔 딱히 먹을 고기가 없다. 돼지고기는 여름에 먹어 탈만 나지 않으면 본전이라는 말처럼 잘 상하기 때문에 먹는 것을 꺼렸고, 소고기도 여름엔 풀만 먹었기 때문에 맛이 없어 잡아먹질 않았다. 소고기는 겨울에 콩 깍지와 볏짚 같은 곡물을 먹어야 제대로 맛이 난다. 요즘엔 옥수수로 만든 곡물 사료를 먹여 항상 맛있게 소고기를 만들고 있지만, 거친 풀을 먹는 소에게 고운 옥수수 사료를 먹여 반추위가 제대로 작동하질 못해 소가 괴롭다고 한다. 반추위에 고운 사료가 들어가 반추가 잘 되질 않으면서 위산이 과다 분비되어 풀 먹을 때 중성 상태이던 반추위가 산성 상태가 되어 새로운 변종 대장균이 발생되었다. 요즘 O-157 대장균이 발생해 리콜 사태가 미국에서 벌어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벼는 복날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벼의 꽃대가 하지 지나 초복이 되면 밑둥에서 올라오기 시작해 한 살, 중복 쯤에는 중간쯤 올라와 두 살, 말복 지나면 세 살 먹어 곧 이삭을 패 올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벼와 같은 과(科)인 피가 벼 옆에 딱 붙어서 함께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 놈은 벼와 아주 비슷하게 생겨 농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고 농부도 그놈의 뛰어난 위장술 때문에 가까이 가서 알아 볼 수 있다. 이 놈이 벼와 함께 복날마다 따라서 나이를 먹으니 복날 즈음에 농부는 이놈들 피사리하느라 뙤약볕에 논바닥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반나절만 지내다 보면 절로 진이 빠지니 몸보신을 하지 않고서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런데 딱히 몸보신할 고기가 주변엔 없다. 개 말고.
개는 농경 사회에서는 제일 귀찮은 가축이다. 소는 일도 잘하고 돼지는 거름도 잘 만들고 닭은 달걀도 잘 낳아 참 소중한 가축들인데 개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짓는 일밖에 없다. 먹는 것도 사람하고 똑 같아 부잣집 아니면 똥 밖에 먹일 게 없으니 서민들 집에는 이름도 없는 똥개밖에 없다. 짓는 일도 요즘 같이 인심이 흉흉한 시절엔 중요한 일이겠지만 옆집 숟가락 숫자도 다 아는 공동체 사회에서 개가 짓는 일은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뭐든지 좋지 않은 것에는 꼭 개 자를 붙였다. 개떡, 개복숭아, 개xx, 등등.... 우리 마을 아저씨 중에 풀 이름을 잘 아는 분이 있는데 어느 날 별로 예쁘지도 않은 귀찮은 풀이 있어 아저씨에게 무슨 풀인지 여쭤보니 곰곰이 보시다가 하는 말, “개풀이지!” 하고 자리를 피하신다. 그러나 유목, 목축 사회에서 개는 가장 소중한 가축이다. 소나 양을 지켜주고 몰고 다니는 뛰어난 일꾼이기 때문이다. 그런 개를 우리가 개장국으로 잡아먹으니 질겁을 할 수밖에...
더위가 찾아오는 하지 무렵을 서양에도 개날(dog day)이라 했다. 이집트 나일강이 범람할 때면 꼭 떠오르는 별이 있는데 그게 큰개자리 별의 1등성인 시리우스라는 별이다. 이 별이 떠오르면 나일강이 범람한다 하여 이 별이 뜨는 날을 개날(dog day)이라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동양에서 이 별 이름 또한 천랑성(天狼星)이라 하여 개와 같은 늑대 랑(狼)자를 썼다.
대서에는 아직 잡지 못한 풀과 마지막 전쟁을 치르는 철이다. 매년 반드시 장마 전에 꼭 풀을 잡아야지 해 놓고서는 꼭 놓치고 만다. 올해도 소만 망종 때부터 올라오는 풀들을 보면서 “올해는 기어코 너희들을 제압하리라!” 해놓고선 한 이틀 밭을 비웠더니 또 놓치고 말았다. 급한대로 풀에 약한 벼밭은 다 맸고, 들깨밭은 장마 초에 심었는데 벌써 풀과 함께 자라고 있다. 그래도 들깨는 모종을 심은 거라 아직 풀에 치이고 있지는 않아 여유가 좀 있다. 반면 직파한 서리태, 메주콩, 수수는 위태롭다. 콩은 그래도 아슬아슬 풀 속에서 버티고 있지만 수수가 영 괴롭다. 어제부터 수수밭을 매기 시작했는데 꼭 수수를 닮은 피들이 주변에 같이 올라와 햇갈리게 하여 더 신경쓰게 만든다. 지금도 빨리 이 글을 마치고 수수밭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마지막 풀도 아직 잡지 못했는데 가을 김장 농사 준비에 벌써 마음만 바쁘다. 며칠 전 배추밭으로 쓰려고 방치한 풀밭에 오줌을 잔뜩 뿌리고 부직포를 덮으려 했으나 급한 마음에 부직포만 덮어버렸다. 지나고 나면 항상 후회하는 게 똑 같다. 좀 늦더라도 오줌을 뿌려 둘 것을..... 나중에 밑거름을 따로 하다보면 미리 해 두지 않아 몇 배의 힘을 들여야 하니 늘 같은 후회를 하곤 한다. 올해는 배추도 직파할 것을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설레인다.
입추, 가을 문턱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더위
요즘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가을이 곧 들어 닥칠까봐 뙤약볕이 마지막 기세를 뽐내는 것 같다. 하지만 자연의 변화는 거스를 수가 없는가 보다. 가을이 불볕더위 몰래 어느새 우리 주변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직 말복도 남아있는데 어디에 가을이 들어와 있다는 말인가, 황당한 소리 하고 있네....
그제는 하루 종일 땀으로 온몸을 적셔가며 풀매고 집에 들어왔는데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밭에서 온종일 여름 기운과 싸우고 왔더니 어느새 저녁이 되자 집에는 가을 손님이 들어앉아 있는 꼴이다. 그렇지만 가을이 저녁에만 온 것은 아니다. 너무 뜨거워 원두막에 잠깐 피하고 있으면 거기에도 가을이 앉아 있다. 한낮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 풀 매고 있 중에도 잠깐잠깐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이 스쳐지나간다. 하긴 밤에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울고 있는 걸 보면 가을이 오긴 분명히 온 것 같다.
게으른 농부는 어쩔 수 없는가보다. 늘상 하던대로 9시나 10시쯤 밭에 나가 일을 하던 버릇대로 뜨거운 한여름에도 그 시간에 나가 풀을 맸더니 난생 처음 복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워낙 감기를 모르고 산 사람인지라 한여름 감기에 자못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이틀을 그렇게 일하고 다음날 서울 나가 오랜만에 에어컨 바람을 온종일 쐬었더니 곧바로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콧물이 질질 나고 기운은 온데간데 없고 머리는 어질어질한데 더위는 탈진 상태로 몰고 갔다. 약이라고는 참으로 싫어하는 성미라, 속으로 이게 더위 먹어 생긴 감기이니 감기를 다스릴 게 아니라 더위를 다스려야 겠다 생각하고 밭에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있는 익모초를 한 바구니 따다가 믹서에 갈아먹었다. 쓴 것을 썩 기피하질 않았는데 “이야!~, 세상에 이렇게 쓴 것이 있다니.” 온몸을 부르르 떨며 꿀꺽꿀꺽 삼켜야 하는 게 익모초다. 그렇게 두 컵 먹고 복감기를 내 쫓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먼 북녘에서 찾아온 가을 한 자락을 맡아보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매번 입(立)자 들어가는 절기를 겪을 때마다 옛조상들의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 탄복하곤 하지만 아마 그 중에서도 입추가 제일 역동적이고 반가운 절기인 것 같다. 반가운 존재로 치면 봄을 가져오는 입춘이 제일이지만 역동성으로 치자면 가을이 들어섰는데 말복이 기다리고 있는 입추가 제일이다. 입추가 되면 햇빛은 따갑지만 장마철 무더위처럼 후텁지근하지는 않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여름 기운 때문이다. 그래서 말복이 지나면 서서히 가을의 찬 기운이 온누리에 퍼져간다.
하지만 입추 이후 따가운 가을 햇빛이 곡식을 익게 한다. 장마철 다 자라지 못한 곡식과 벼는 마지막 힘을 내어 마저 자라다 때가 되면 밑바닥에서 이삭을 밀어 올린다. 말하자면 몸체 성장을 끝내고 생식 성장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에 접어드는 셈이다. 그래서 입추 이후에는 비가 그치고 햇빛이 쨍쨍할수록 좋지만 약간의 비가 오는 것도 좋다. 못 다한 성장을 마치기 위해서다. 그리고 처서가 들면 몸 속에 숨겨둔 이삭이 밖으로 드러난다. 바야흐로 이삭이 패는 것이다. 이 시기에 꼭 마지막 풀매기를 해주어야 한다. 장마 전에 잡아둔 풀이 장마 기간 동안 또 자라나 있다. 이 때 풀을 잡아주지 못하면 그동안 고생이 도로 나무아미타불이 된다. 온 힘을 다해 이삭을 패 올리기 때문에 흙 속의 기운이 충분해야 한다. 풀만 매지 말고 마지막 이삭 거름을 주면 좋다.
풀은 소만(5월 하순 경) 때부터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소만 망종, 곧 장마 전에 잡아주어야 한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장마 전 잡지 못한 풀은 장마 기간 잠깐 비 그친 틈을 이용해서라도 잡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장마 전에 잡았더라도 장마기간 동안 또 풀이 올라오기 때문에 입추 근방에서 또 잡아주어야 한다. 이삭과 열매가 맺으려면 흙 속의 모든 기운을 빨아들여야 하므로 풀만 매주지 말고 웃거름도 줄수록 좋다.
입추 때 해야 할 중요한 농작업은 역시 김장 농사 준비다. 우선 밭부터 준비하고 거름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모종을 키울 준비도 해야 한다. 나는 이번에 배추를 모종 반 직파 반 할 계획이다. 앞으로 가급적 모든 걸 직파 재배로 전환할 계획이다. 과도기로 이번만 모종과 직파를 병행하기로 했다. 장마가 지나니 고추마다 탄저병이 극성이다. 주말농사 회원이 5평에 몇 포기 심은 고추에도 탄저병이 들이닥쳤다.
그런데 직파한 내 고추는 아직 멀쩡하다. 장마 때 시들음병이 1/3 쯤 왔는데 어느새 말짱하다. 탄저는 커녕 역병도 없다. 지주도 박지 않고 끈도 띄우지 않았는데 폭우에 반 채 안되게 쓰러졌다. 반 이상은 멀쩡하지 버티어 서 있다.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하지만 수확량은 예상대로 적다. 많이 달면 쓰러질까봐 스스로 양을 조절하는 것 같다. 그래도 고추 하나하나는 참으로 실하게 생겼다. 곁순도 별로 나질 않아 순지르기도 하지 않았다. 신문으로 피복하고 구멍 뚫어 10알씩 파종한 다음 발아하지 않은 곳에는 따로 모종을 내서 빵구를 떼웠다. 하지만 아주 어린 놈을 뿌리 다치지 않게 옮겨 심었기 때문에 원뿌리가 그대로 살아있다. 그놈들도 뽑아 보면 직근이 튼실하게 힘을 내고 있다.
그러니까 직파한 이후 한 일이라고는 빵구 떼우고 풀 두 번 매주고 고랑 피복한 것밖에 없다. 지주나 끈은커녕 매년 해주던 5~6번의 목초액 살포, 곁순 제거는 전혀 해주질 않았다. 지금 이글 쓰고 나면 마지막 풀매기와 쓰러진 놈 세우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들깨와 고구마 빼고는 모두 다 직파를 했는데 매우 만족스럽다. 늦게 심은 탓도 있지만 성장 속도가 좀 느리긴 하다. 그러나 이도 얼마 안있어 따라 잡을 것이다. 그래서 배추도 직파를 하여 튼튼하게 키워서 벌레에 스스로 버티게 해 볼 요량이다. 배추도 모종을 옮겨 심고 나면 꼭 3~5번의 목초액을 주어야 했다. 직파를 하면 모종 몸살도 않고, 또 밀식해서 솎아 뽑아 먹는 재미도 있다.
입추 때 찾아오는 명절은 음력 7월 7석과 7월 15일의 백중절이다. 칠월칠석이면 비가 오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서 얘기한 입추 때 잠깐 오는 비일수록 좋다. 입추인 오늘이 칠월칠석인데 비올 기세는 전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비보다는 역시 맑은 날일수록 좋다. 입추 때 맑으면 풍년이 들고, 비가 조금만 오면 길하고 많이 오면 흉년 든다고 했다. 맑으면 역시 벼를 비롯한 곡식들이 잘 자라고 익으니 당연히 풍년이 들고 약간 오면 무더운 여름 기운을 적셔주어 덜 자란 놈들에게도 좋지만 김장 농사 준비에도 좋고 많이 오면 벼가 익질 못하니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백중절은 농부에게 매우 중요한 명절이다. 단오와 함께 마을 축제로 단오가 벼농사 시작을 알리는 명절이라면 백중은 벼농사 마무리를 알리는 명절이다. 백중의 다른 이름으로는 호미씻이, 머슴생일, 등이 있는데 이는 마지막 논 피사리를 끝내고 힘든 일 마쳤으니 호미는 씻어 걸어둔다, 머슴이 힘든 일 끝냈으니 격려차 잔치 상을 차려준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벼는 말복 즈음에서 마지막 피사리를 끝낸다. 그리고 처서가 지나면 이삭이 팬다. 대개 백중은 말 복 이후 처서 전에 오는데 이때가 되면 힘든 논농사는 마무리 하고 밭에서는 먹을 것들이 많이 나올 철이다. 여름 과채류들인 고추, 오이, 호박, 수박, 참외, 그리고 일찍 심은 옥수수 등 먹을 게 많으니 이래저래 잔치 벌이기도 딱 맞는 철이다. 하여튼 대표적인 마을 잔치인 단오와 백중은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경 공동체 축제이며 농경 문화의 꽃이라 할만 한데 기계 농사가 보편화되고 그에 따라 두레 문화가 퇴색하면서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문화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할뿐이다.

직파한 고추, 장마 지났는데 쓰러지지 않고 잘 견디고 있다. 물론 아무 병도 없다. 바닥은 신문지로 멀칭하고 고랑은 피복재로 덮었다.

직파한 논, 올 봄 우리 농장 회원 한 분이 조그만 논을 만들어 자광미라는 토종 종자로 직파한 벼다. 건답 상태에서 줄 띄워 뭉터기 직파를 한 다음 자라는 만큼 물을 넣었다. 도복이 잘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름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씨 넣고 피복할 때 부엽토를 준 것 외에. 기대대로 도복할 염려는 없는 것 같고, 땅 밑에서는 곧 이삭 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처서, 모기 따라 풀도 기가 죽는 철
입추 지나고 말복도 지나니 쓸쓸한 기운이 한낮에도 느껴지는 철이 되었다. 며칠 전에는 비가 오더니 한낮에도 추운 기운이 확연히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온누리에 퍼져있던 여름 기운이 철수할 때가 된 것이다. “처서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고 했다. 극성을 부리던 모기도 이제 추위를 만나 점차 기운을 잃어 제대로 바늘을 찌르지도 못해 나온 말이다. 그런데 모기만 기운을 잃는 것은 아니다. 온 세상에 뭇 생명들이 점점 드센 기운을 잃어가고 춥고 긴 겨울을 준비하는 철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처서가 지나면 풀들도 힘을 잃는다. 그래서 “처서 지나면 풀들도 울며 돌아간다”고 했다. 처서 지나 산소 벌초도 하고 논둑 풀도 깎고 가축들 먹일 목초도 베어 말리는 것이 다 그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죽을 때 그냥 죽는 게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 후손을 남기며 죽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풀들도 이때부터 열심히 후손을 낳으려 애를 쓴다. 씨를 맺는 게 그것이다. 그러니 풀들 씨 맺기 전에 열심히 풀을 매야 다음 해 덜 고생을 한다. 사실 기운을 잃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정확히 말한다면 2세를 준비하는 철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가을 들녘의 뜨겁고 맑은 하늘은 벼와 곡식들을 영글게 하고 튼실하게 해준다. 자신들의 인생은 중년을 넘었지만 후손들을 열심히 키워 종족을 보전하려 한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란 뜻도 다 이와 관련이 깊다. 높고 맑은 하늘의 따가운 가을 햇살이 알곡을 여물게 해주며 그런 곡식을 먹고 살을 찌운 말이 추운 겨울을 잘 날 수 있다.
처음으로 직파한 고추에 제법 붉은 고추가 곳곳에 달렸다. 지주도 박지 않고 끈도 띄우지 않아 반쯤 쓰러진 놈도 많고 어떤 놈은 열매인 고추를 뻗뻗하게 받쳐 그에 의지하고 있는 놈도 있다. 일주일 전쯤에는 마지막 풀매기를 하며 북주면서 쓰러진 놈들 세워주기도 했다. 그리고 웃거름으로 오줌을 사이사이에 골고루 뿌려주었다. 장마가 지나도 전혀 탄저병이 오질 않는다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내 교만을 조롱이나 하듯이 결국 한포기가 병이 걸렸다. 자세히 보니 이번 장마에 풋마름병 걸린 놈이었다. 연작을 많이 했거나 배수가 되질 않아 습해서 오는 병인데 낮에는 잎이 푹 쳐져 있다가 밤에는 제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결국엔 말라 죽어버리는 병이다. 풋마름병에 걸린 놈들이 줄잡아 전체에 1/3은 되었다. 그런데 장마가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가 알아서 싹 나아서 좋아했는데 그 중 한포기에 탄저병이 침입한 것이다. 과감하게 병 걸린 놈을 뽑아 버렸지만 계속 찝찝했다. 그리고 오늘 가보니 다른 포기에는 아직 전염된 것이 없어 일단 안심했다.
요즘 고추들은 일찍 빨개진다. 장마 지나면 꼭 탄저병이 찾아오니 아예 장마 전에 빨개지도록 육종한 것이다. 그러니까 장마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빨간 고추를 수확하고 장마 지나 탄저병이 오면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냥 갈아엎어 배추라도 심으면 땅 효율이 높아져 좋다고들 한다. 오이도 비슷한데, 오이는 노균병이 일찍 찾아온다. 밑에서부터 잎이 누레지면서 타 죽는데 누렇게 올라오는 속도보다 빠르게 위에서 열린 열매들을 수확한다. 그리고 포기 전체가 다 누레지면 갈아 엎어 김장이라도 심는다. 그런데 고추는 원래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고추는 후손을 많이 퍼뜨리려는 의지로 열매를 맺고 그 안에 많은 씨들을 보관한다. 그리고 튼튼한 씨들을 받으려면 따갑고 맑은 가을 햇살을 흠뻑 받아야 한다. 열매를 맺어도 그리 크지 않으며 열매 과육도 단단하지 않고 두껍지 않다. 하지만 씨는 매우 많다. 후손을 많이 퍼뜨리려는 식물들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습하고 후텁지근한 한여름 날씨는 곡식의 영양생장을 돕지만 맑고 따가운 햇살은 곡식의 생식생장을 돕는다. 수분이 풍부하고 날도 더워야 곡식이 키를 키울 수 있다. 키가 다 크고 생식생장, 그러니까 사춘기로 들어서려면 곡식은 그동안 쌓아둔 영양으로 2세를 낳을 꽃대를 밀어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뿌리에게는 물보다는 산소가 필요하고 열매에 영양을 공급해줄 광합성을 위해서는 따가운 햇살이 필요하다. 덧붙여 아침 저녁으로는 기온이 쌀쌀해 일교차도 점점 커져야 열매가 맛있게 여문다. 날이 점점 추워지면 당분을 만들어 저장해두어 추운 겨울을 대비하므로 과실이 맛이 난다. 속담이란 참으로 그 과장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또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 같은 맛이 깊은 울림을 주곤 한다. 그 가운데 벼와 관련된 가을 입추와 처서의 속담이 주는 맛도 일품이다. “입추에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했다. 벼는 입추 전후해서 눈에 띄게 자란다. 입추가 되면 마지막 영양생장을 마무리 하면서 보이지 않는 밑동 밑에서는 어린 이삭을 피어 올린다. 그 자람이 눈에 띌 정도로 빨라 그 소리에 놀란 개가 짖는다니 그 과장도 재미있지만 그만큼 한꺼번에 빠르게 성장한다는 얘기다.
그러다가 처서가 되면 일시에 이삭이 팬다. 처음 밭벼 농사를 지을 때, 말복 즈음 마지막 풀매기를 하는데 마침 갑작스레 지나가는 소나기에도 불구하고 조금 남은 풀을 마저 매겠다는 욕심에 그 비를 다 맞으며 풀을 매다 그만 감기 몸살에 걸린 적이 있다. 그리곤 벼에 질려 밭에 가기를 뜨악해 하다 어느새 처서가 지났다. 더 이상 궁금증을 어찌하지 못해 찾아가보았더니 일거에 이삭이 팬 밭벼를 보고는 얼마나 감동했던지.....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니 그때의 기분이 살아나는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사방에 일이 갑작스레 일거에 벌어지는 일을 비유할 때 “처서에 장(長)벼 패듯” 한다 했다. 입추 지나면 귀뚜라미들이 서서히 노래를 부르다가 처서가 되면 함성을 지르는지 꽤나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잠자리에 들려니 그 소리가 정겹기도 하지만 그 볼륨에 “그 놈들 소리 한번 크네”하고 투덜대며 잠을 청한다.
백로, 제비 강남 가는 가을
처서도 지나고 백로가 왔는데도 모기도 그대로 있고 풀도 풀 죽을 기세가 뚜렷하지 않다. 확실히 온난화 징후가 곳곳에 뚜렷한 것 같다. 백로인 오늘, 이 글 쓰고 있는 지금 밤 10시 30분 집 실내 온도가 26도나 된다. 당연히 모기향도 피어 놓고 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뜨거운 여름날 그대로다. 한낮 온도가 30도까지 올라갔다. 물론 온도가 여름 같다고 하나 전체적인 기운은 분명 가을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올해 가을 배추 농사는 시작부터 고난의 행군이다. 씨도 잘 못 산데다 요령 피워 만든 상토에도 문제가 심각했다. 몇 년 전 당한 적이 있어 어느 종묘 씨앗은 사지 말아야지 한 결심도 세월 따라 희미해진 상태에서 지나던 길에 종묘상이 있기에 들어간 곳이 하필 그 종묘상이었다. 설마 또 그럴 리가 있을까 하고 샀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대로 발아가 반도 되지 않았다. 혹시 흙에 문제가 있을지 몰라 단골로 가던 종묘상에 가서 조금 비싼 씨앗을 사다 또 심었다. 역시 씨앗의 문제였다. 발아가 거의 100% 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발아는 잘 되었는데 이번엔 자라질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흙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연 흙 채취해오기 힘들어 올 봄 얻어온 경량토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피트모스라는 이끼가 탄화된 수입 가짜 흙이 강산성이라더니 그게 문제인가보다 하고 석회를 섞어 다시 씨앗을 넣었는데 별 차이가 없다. 나와 몇몇 사람만이 잘 자란 것을 골라 겨우 모종을 낼 수 있었지만 나머지 회원들에게는 결국 시장 가서 모종을 사다 주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모종을 옮겨 심었는데 이제는 벌레들이 마구 달려든다. 거세미에서부터 톡톡이 청벌레 귀뚜라미 등 예년보다 더 다양해졌다. 특히 거세미는 봄 여름에 극성인데 가을까지 극성인 것을 보면 확실히 온난화 영향인 것 같다.
회원들 밭을 곰곰이 보니, 게으름 피우느라 풀밭을 매지 않고 부직포로 덮은 밭이 피해가 덜하다. 부직포가 방어막 역할을 한 것이다. 주변 밭이 잡초로 뒤덮인 곳은 피해가 크다. 자료를 뒤져보니 주변 풀밭에 거세미 나방이 새끼를 낳아 그리로 몰려들기 때문이란다. 배추는 가뭄을 잘 타는지라 마르지 말라고 풀 깔기를 회원들에게 많이 권하는데 이번엔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다. 거세미가 알을 까놓은 풀을 거두어 깐 셈이 되어 버렸다. 풀을 쉽게 죽이기 위해 부직포를 덮은 밭은 풀도 쉽게 죽인데다 거세미 피해도 예방을 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다만 부직포로 덮었어도 바로 옆의 밭이 풀밭이라면 효과가 별로 없다. 그 밭에 알을 깐 거세미가 잔뜩 달려들기 때문이다.
백로가 되면 제비가 강남 갈 채비를 서두른다. 그런데 요즘은 제비가 없다. 강남 간 제비가 돌아오질 않으니 강남으로 떠날 제비도 없다. 이래저래 강남은 제비한테도 좋은 세상인가보다. 올 여름 제주도에 토종 찾으러 방문했다가 실컷 제비를 만나고 왔다. 그렇게 많은 제비를 어릴 때 보고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참으로 제비란 놈은 미끈하게 잘도 생겼다는 감탄을 자아낼 만 했다. 물 찬 제비 같다는 등, 제비족이라는 등의 표현들이 다 제비가 잘 생겼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게다. 제비가 강남 간다는 것은 이제 날씨가 본격적으로 가을로 접어들고 말 그대로 하얀 이슬(白露)이 내려 추운 날씨로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로인 오늘 아침, 아직 하얀 이슬이 내릴 흔적조차 보이질 않았다. 아직 여름 같은 게 참 날씨 변덕 심하다 싶었다. 그래도 자연의 이치는 여전하다. 가을의 햇볕 받아 벼 이삭도 잘 익고 있고 밭 열매 채소들도 열매를 잘 달고 있다. 기온도 중요하지만 역시 날씨의 관건은 해의 길이(長日, 短日)에 달린 것 같다. 백로가 되면 이제 농사도 점차 한가해진다. 백중에 호미를 씻어 남정네들이 휴식을 취한다면 여인네들은 백로에 호미를 씻어 오랜만에 친정 나들이를 한다. 휴가를 가는 것이다.
올해는 추석이 빨리 찾아온다. 보통 추분 근방에 오는 적이 많은데 올해는 백로와 추분 중간에 추석이 있다. 추석秋夕은 순 우리말로 한가위다. 추석보다는 한가위라는 말이 더 정겹다. 명절 중에 순 토종 명절은 유일하게 추석뿐이다. 그러니 더더욱 한가위라는 토종 우리말을 썼으면 한다. 한가위는 말 그대로 하면 한 가운데라는 뜻이다. 대개 보름이 가운데에 있으니 제일 큰 보름달이 뜨는 한가위야 말로 제일 한 가운데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한가위만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었다. 일종의 추수 감사절인데 아직 본격적인 추수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추수 감사절이 11월 중순 쯤 일요일인 것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너무도 많이 난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의 추수 감사절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때쯤 되면 대충 다 수확하고 한해 농사를 마무리 할 때이기 때문이다. 한가위 때 차례 상에는 풋 곡식이 올라간다. 덜 익은 벼 중에서도 잘 된 놈을 골라 손으로 훑어 차례 상에 올리고 송편도 만든다. 콩도 풋 익은 것을 골라 송편 속을 한다. 그러니까 뭐든지 풋것을 갖고 상을 차린다. 왜 그럴까? 별로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농사를 지으며 느낀 추측은 있다. 나는 이 추측을 거의 확신하지만 말이다.
우선 풋것으로 조상님께 바치는 것은 제일 좋은 것을 바치는 것이다. 곡식으로 약을 쓰려면 풋것으로 해야 한다. 풋것의 기운이 맑고 힘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풋것이 좋다는 뜻이다. 속된 말로 비유를 들면 영계인 셈이다. 조상님께 폐계를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 풋것을 실제로 먹는 것은 죽은 조상 귀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조상 핑계대고 오랜만에 몸보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참 지혜롭기도 하다. 사실 명절이나 제사는 오랜만에 가족들이 몸보신하는 날이다. 그리고 자주 보지 못하는 일가친척도 불러들여 함께 나눠 먹고 서로 간에 가족 공동체를 확인하는 날이다. 더불어 마을 축제도 열면서 마을 공동체를 더욱 돈독히 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명절이나 제사는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 그래도 끈질기게 그 문화가 유지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하다. 나는 이왕 하는 것이면 좋은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고쳐갔으면 생각해 봤다. 요즘이야 맛난 것도 많고 영양도 넘치는 게 차라리 문제이니 힘들게 제사상 차리지 말고 서로 음식을 해 온다든가, 그것도 되도록 간단하게 해서, 남자들도 설거지 하는 등, 오랜만에 가족들이 만나 서로 배려하고 아끼는 가족 공동체를 돈독히 하는 자리가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런 자리를 통해 우리네 전통문화를 확인하고 공부하는 자리가 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가령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제사는 조상님이 돌아가신 전날 지내는 것이라는 오해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간지력을 공부하기 전에는...... 원래 하루의 시작은 자시(子時)다.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를 이른다. 자정(子正)이라 함은 그래서 밤 12시가 되는 것이다. 낮 12시를 정오(正午)라 하는 것도 오시인 낮 11시에서 1시의 가운데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돌아가신 날 자시가 되면 조상이 오신다고 하여 자시에 지내는 것인데 그게 밤 11시가 되다보니 전날 지낸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통행금지가 있던 옛날엔 밤 11시에 제사를 지내면 집에 돌아가기가 힘들어 시간을 더 당겨 지내게 되어 결국 제사는 전날 지낸다는 완전히 잘못된 착각이 생긴 것이다. 이미 조상님이 왔을 때는 제사상도 물려지고 후손들은 잠만 자고 있을테니 조상님이 참으로 난감한 꼴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풋것을 거둬 감사절을 지내는 결정적인 이유로 생각되는 것은 풋것으로 종자를 거둔다는 사실이다. 다 말라버린 곡식으로는 당연히 종자로 쓸 수 없을 것이며 적당히 익은 것도 종자로 쓰기에는 최선이 아니다. 후숙(後熟)시키는 과정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 덜 익었지만 잘 생긴 포기를 거둬 곡식은 아직 털지 말고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푸른 포기의 남은 영양이 씨앗으로 몰리면서 씨앗의 후숙이 고르게 잘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보약이 되는 풋것을 거둬 조상과 인간도 함께 먹고 더불어 후손도 먹을 수 있도록 종자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보름달은 수확을 상징하고 가장 큰 보름달인 한가위야 말로 최고의 수확철이니 더욱 기운 찬 종자를 거둘 수 있는 철인 것이다.
추분, 본격적 수확철
추분은 춘분처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때이며 춘분과 달리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때이다. 춘분은 낮이 밤보다 길어지면서 기온이 영상의 날씨로 돌아서는 것과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추분에는 반대로 영하의 기온으로 돌아설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아직 여름 더위가 남아있기 때문인데 춘분 때보다 대략 10도 정도 기온이 높다. 농사를 지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농사에는 기온보다 해의 길이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식물들은 기온보다 해의 길고 짧음에 더 영향을 받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원래 사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보는데 문명화되면서 사람들은 해의 길이보다 기온에 더 민감해졌다. 단열을 우선시 하는 아파트 문화, 에어콘, 난방기 등의 발달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기온에 더 민감해지면 오히려 자연의 변화에 둔감하거나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기온 온난화 현상이 날로 뚜렷해져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식물들의 생리 활동은 이어져 간다. 그것은 식물들에게는 기온보다 해의 장단(長短)이 더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해의 길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기온이기 때문에 온난화로 영향을 안 받거나 덜 받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 온난화로 추분이 되었음에도 여름 기운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곡식들은 추분의 때를 알고서 알곡들을 익혀 가고 있다. 해의 길이가 짧아지고 있음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날씨가 여름 같아도 마음은 급하다.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씨앗을 맺고 알곡을 튼실히 해야 함을 변함없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역시 추분은 추분인 것이다.
추분이 되면 하늘의 벼락이 사라지고 벌레들은 땅 속으로 들어가 창문을 닫으며 겨울 준비를 한다. 가끔 태풍이 들이닥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날씨는 물이 말라 건조해진다. 들녘의 곡식들도 겨울 준비에 바쁘다. 본격적인 수확철이 다가온 것이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니 덩달아 농부들도 바쁘다. 이른 벼 수확하랴, 고추 따서 말리랴, 미리미리 익어 터지는 녹두 팥 따랴, 고구마 줄거리, 호박고지 깻잎 등 묵나물 만들랴 정신없는 가을 농번기가 온 것이다. 얼마 전 잠깐 찾아온 농한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마음이 급해지는 철이다.
논에 심은 자광미는 반은 벌써 익고 반은 아직 이삭이 푸르다. 분명 같은 자광미를 심었는데 확연히 다르다. 일찍 익은 벼는 키도 작고 아직 푸른 벼는 키가 훤출하다. 곰곰 생각해봤더니 하나는 김포에서 얻어온 자광미고 다른 하나는 남쪽 장흥에서 얻어 온 자광미다. 사진을 찍어 토종 박사님께 여쭈었더니 같은 자광미인데 하나는 이른벼, 조생종 같다고 하셨다. 이른벼와 늦벼가 조그만 논에 같이 있으니 그 놈들 보는 맛이 영 껄떡지근하다. 이른 놈을 보면 빨리 거두어야 할 것 같고 늦은 놈을 보면 왠지 안쓰럽다. 벼농사 처음 해보는 논 주인인 우리 농장 회원 왈 “저렇게 예쁜 놈을 어떻게 베지요?” 한다.
밭에서 며칠 전 짧은 틈을 내 전어를 구어 먹었다. 우리 농장의 한 회원이 한 턱 내는 자리였다. 전어는 세 번째 먹어 보는데 이제야 그 맛을 알겠다. 처음엔 그렇게 가시 많은 생선이 무에 맛있다고 난리인가 했다. 두 번째는 그럭저럭 소주와 함께 맛있게 먹었는데 세 번째는 “이 야, 이 맛이네!” 했다. 그냥 가시도 마구 씹어 먹고 대가리도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전어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더니 그 뜻을 이제야 알겠네요.” “며느리 친정 집 가면 전어 구워 먹는다는 말도 있어요.”
“하하......”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니 백로 지나면 대충 바쁜 밭일이 끝나 여자들이 잠깐 한가해진 틈을 타 친정집으로 휴가를 가곤 하는데 하필 이 때가 전어철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친정집 간 며느리 자기 빼고 전어 먹을까 종종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려는데, 집에서는 며느리 냄새 맡기 전에 빨리 먹어치우려 했을 것 같다. 아무튼 옛사람들의 풍자와 해학을 느낄 수 있는 맛과 얘기다.
추분 즈음에는 보통 추석이 있지만 올해는 추석이 빨라 추분 즈음하니 중양절이 가깝다.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로 양의 숫자인 9가 겹쳤다 해서 중양(重陽)이다. 양의 숫자가 겹치는 날을 우리는 길하게 보았다. 따뜻한 양의 기운이 이중으로 들어 있어서다. 그래서 1월 1일은 설날이요, 3월 3일은 삼짇날로 중삼절(重三節), 5월 5일은 단오날로 중오절(重五節), 7월 7일은 칠석날, 그리고 9월 9일 중양절이다. 삼짇날 제비가 강남에서 왔다가 중양절에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마지막 양의 계절이 물러가니 제비도 물러가는 것이리라. 올해처럼 추석이 이른 날에는 가난한 농가에선 차례상에 올릴 햇곡식이 없어 중양절에 익은 햇곡식으로 다시 차례를 올리기도 했다. 이를 중구차례라 한다.

한 가운데 푹 꺼진 게 조생종 자광미다.
한로, 깊어가는 가을
추분이 지나면 가을은 점점 짙어져 본색을 드러낸다. 단풍본색이다. 찬이슬이 맺힌다는 한로가 되면 아무리 온난화라 해도 날을 추워지기 마련이다. 아직도 한낮의 날 씨는 조금만 일하면 땀을 흘리게 하여 가을 날씨라 하기에 좀 그러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찬바람의 기세를 보면 역시 가을임에 틀림없다. 한로가 되면 제비와 기러기가 교체를 한다. 추분에 내려가지 못한 제비들은 마지막 채비를 차려 강남 가고 북에서는 기러기가 내려온다. 본격적인 추위가 느껴지는 계 절을 바쁘게 오가는 철새들이 알려준다. 논과 밭에서는 오곡백과를 거두느라 바쁜 철이다. 벼를 거둔 논에서는 미꾸라지를 낚아 추어탕을 해 먹는다. 추어탕의 추鰍자가 가을을 뜻하는 것을 보면 추어탕은 분 명 가을 음식이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했으니 남자들의 정기를 돋우는 추어탕을 먹어주어야 가을이 가을다운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추어탕을 아무 때나 먹으니 추어탕도 계절을 잊고 남자들도 계절을 잊은 것 같다.
어제는 일찍 심은 밭벼를 수확하고 오늘은 논을 만든 회원이 드디어 첫 수확을 했다. 나의 논은 아니지만 내가 구한 종자로 뭉텅이 직파법을 적용한 첫 논이라 나도 적 잖이 흥분이 되는 것 같았다. 첫 수확이라 기분도 좋았겠지만 올해 날씨가 벼에는 아주 좋아 풍년이 들어 더욱 기분이 업up 되었다. 밭벼는 알곡을 세어보니 한 이삭 가지에 150알이 달렸고 논벼 중 녹토미(파란쌀)는 130알이 달렸다. 이 정도면 확실히 잘 된 것으로 보인다. 들깨도 수확했는데, 영농일지를 뒤져보니 6월 29일 모종을 정식했다. 밀 수확한 곳에다 심었는데 밑거름은 하나도 주질 않고 웃거름으로 풀만으로 만든 퇴비를 주었는 데 예상 외로 알곡이 많이 달렸다. 탈곡을 해 봐야 알겠지만 공짜 농사를 진 것 같아 기분도 좋고 왠지 미안하기도 했다. 풀도 딱 한번 매주었다.
밭벼, 콩, 서리태, 팥, 갓끈동부, 수수, 옥수수, 고구마, 오이 등 여름 곡식들은 다 장마가 시작되는 6월 말경에 심었다. 늦게 심어 크질 않아 수량은 적을지 모르나 쓰러질 염려가 없고, 장맛비를 맞기 때문에 발아 속도도 빠르고 초기 생육이 좋아 풀에 대한 경쟁력이 높다. 늦게 심었으니 남들은 벌써 수확했거나 수확할 날을 손꼽 고 있는 것들이 나는 이제야 익어가고 있다. “이러다 된 서리 내렸는데도 안 익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로가 되면 이제 밀, 보리를 심어야 한다. 따뜻한 남쪽에서는 좀 더 늦게 심어도 되지만 중부 지방에선 적어도 10월 중순 전에 심는 게 좋다. 온난화 때문에 늦게 심 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온난화라는 게 무조건 따뜻해지는 날씨라기보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날씨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올 초봄, 아직 동장군 세력들이 남 아있을 때인데도 여름 날씨처럼 덥다가 서리가 물러갈 곡우도 지나고 입하도 지났는데 별안간 늦서리가 들이닥쳐 여름 작물들이 냉해를 입기도 했으니 마음을 놓을 일 이 아니다.
밀, 보리는 겨울이 오기 전에 세치 정도는 자라 있어야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다. 어린 싹 상태에서 찬바람을 맞으면 얼어 죽을 수 있다. 아직 베지 않은 벼가 있으면 사이짓기로 벼 사이에 심어도 된다. 매년 이렇게 해오고 있는데 풀이 훨씬 덜 하다. 작년부터 밀을 뭉텅이 직파로 심었는데 그 기세가 아주 좋아 풀을 두 번 밖에 매질 않았다. 벼 사이에 괭이로 골을 낸 다음 밀을 30알정도 씩 뭉텅이 넣은 다음 흙이 아닌 퇴비로 피복을 했다.
사이짓기로 파종하는 것이라 밑거름 넣기도 힘들고, 흙으로 피복한 다음 또 거름을 넣어주려니 이중 일인 것 같아 꾀를 낸다고 흙이 아닌 퇴비를 덮어준 것이다. 당연 히 완숙된 퇴비였다. 한 구멍에 한 주먹씩 넣어주었다. 그것으로 밑거름은 끝이다. 봄에 춘분 즈음에서 오줌으로 1차 웃거름 주고 곡우 지나 2차 오줌 웃거름 준 게 다 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밀 뿌리에 서릿발이 서질 않은 것이었다. 보리밟기를 해주지 않아도 된 것이다. 겨우내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뿌리 밑에서 서릿발이 서 흙 이 들어 올려지는데 따뜻한 봄기운에 서릿발이 녹아 없어지면 빈 공간이 되어 뿌리가 말라 죽는다. 그래서 밟기를 꼭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서릿발이 안 섰으니 보리 밟기 일이 없어진 것이다.
추측컨대 지난 겨울엔 눈도, 비도 별로 오질 않아 가문 겨울이어서 흙에 물기가 별로 없으니 서릿발도 당연히 서질 않았을 것이거나, 더불어 흙 대신 퇴비로 덮은 바람 에 보온이 잘 되어 서릿발이 서지 않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한로는 또한 씨앗 갈무리하는 철이다. 벼를 비롯한 곡식들을 수확해 갈무리하고, 고추, 오이, 호박 등 여름 과채류들도 씨앗을 받고 고구마도 캐어서 먹을 것은 먹고 씨 할 것도 잘 갈무리해두어야 한다.
벼를 씨로 쓸 것은 조금 일찍 거둔다. 아직 줄기에 푸른 기가 있을 때, 알곡이 덜 영글었다 싶을 때 베었다가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잘 말랐다 싶으면 탈곡을 하는데 도리깨나 탈곡기 같이 알곡을 강타하는 것들로 탈곡하지 말고 홀태 같은 것으로 훑어주어야 좋다. 콤바인 같은 기계도 당연히 좋지 않다. 씨앗이 타격을 받으면 병에도 약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씨를 건강하게 받아야 자랄 때도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다. 양이 작으면 손으로 훑어 주어도 된다. 조, 수수, 옥수수 같이 양이 적은 것은 이삭 채 거두어 잘 말린 다음 처마 밑이나 벽에 걸어두었다가 이듬해 파종할 무렵 꺼내어 털어서 씨로 쓰면 된다.
고구마는 종자로 쓸 것은 상강 전에 캐는 게 좋다. 서리를 맞으면 잘 썩어서 종자로 쓸 수가 없다. 물론 먹는 데에는 이상이 없지만 보관이 오래가질 않으니 먹기 위한 것이라도 상강 전에 캘수록 좋다. 오이, 가지, 호박의 채종은 좋은 열매를 찍어두었다가 무를 때까지 놔둔다. 물러 터져도 괜찮지만 열매가 터지면 씨앗 줍기도 힘드니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열매를 손으로 만져보아 물렁물렁할 때면 된다. 과육의 영양이 씨앗으로 몰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속을 파고 씨앗부분을 훑어서 물에 담그면 씨만 물에 가라앉는다. 쭉정 이 씨와 찌꺼기들은 가벼워 물에 뜨므로 조리로 일러 건져낸다. 가라앉은 씨를 걸러내 말리면 된다.
오이씨는 젤 형태로 껍질이 붙어 있는데 손으로 떼기가 아주 힘들다. 물에 하루 정도 담가두면 절로 벗겨지므로 힘들여 애 쓸 필요가 없다. 고추는 씨앗을 채종하기가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 좋은 포기와 열매를 골라 배를 가르고 씨를 꺼낸 다음 햇빛에 잘 말리면 된다. 더 좋은 방법은 고추와 함께 태양초로 말린 다음 채취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영양이 씨에 몰리기 때문이다. 말리다가 고추와 함께 곰팡이가 피거나 병에 걸릴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상강, 마지막 농번기 가을의 끝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이다. 이때까지는 모든 여름 곡식들 수확을 끝내야 한다. 서리를 맞으면 여름 곡식들이 타격을 입어 맛도 덜하고 씨앗의 힘도 약해진다. 다만 서리태라는 콩은 서리를 맞은 후에 수확한다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수확도 해야 하지만 파종해야 할 것도 있다. 밀, 보리, 마늘, 양파가 그것이다. 수확할 것들도 때를 놓치면 안되지만 파종해야 할 것들도 때를 놓치면 안되니 의외로 바쁜 농번기다. 기나긴 겨울 농한기로 접어든다고 마음 놓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서리도 무서리가 있고 된서리가 있는데 된서리를 맞아야 올해 농사가 파장이 된다. 지표면에서 수증기가 올라가다 찬 공기를 만나 결빙되는 게 서리인데 이 서리는 우리 농사의 성격을 크게 좌우하는 기점이다. 그러니까 서리의 시작과 끝을 잘 파악하는 것은 농사의 성패를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무상일수無霜日數라 하여 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가는 그 지역 농사의 성격을 근본짓는 일이 된다.
가령 서리가 늦게까지 내리고 일찍 찾아오는 강원도 산골이나 북쪽 산악 지방에선 벼농사가 힘들다. 반면 한여름 날씨가 서늘해 고랭지채소 농사는 잘 된다. 서리가 일찍 가시고 늦게 찾아오는 남쪽 들녘에선 벼농사가 잘되는데 반해 한여름 채소 농사는 안된다. 반면 겨울 날씨가 따뜻해 겨울 채소 농사는 잘 된다. 앞의 소서, 대서 글에서 우리 농사의 성격을 근본짓는 1순위를 장마라 했다면 2순위는 바로 서리, 곧 무상일수다. 3순위는 춥고 긴 영하의 겨울 날씨다. 이에 대해선 소한, 대한 때 얘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날씨와 기후가 변하고 있다. 본 장마 때는 비가 적어지고 장마 이후에 비가 많이 내리는 식으로 바뀌어 기상청에서는 장마철을 따로 예보하지 않기로 했다. 서리도 변덕이 심해져 올해 같은 경우는 봄이 다 되었는데도 서리가 내리더니 가을이 되고 상강이 되도 아직 서리 내릴 기미가 없어 보인다. 다행히 여름 같던 가을 날씨가 상강 때 비가 내리더니 가을 맛이 나게 추워지고 하늘도 제법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답게 높고 맑아졌다.
된서리는 내리지 않았지만 만물의 생명들은 상강을 알아채고 너나 없이 겨울 준비에 들어간다. 상강이 되면 겨울 잠을 자는 벌레들도 마지막 동면 채비를 서두르고 숲의 나무들도 단풍의 화려한 끝을 장식하기에 바쁘다. 코딱지만한 땅에서 농사짓는답시고 나는 정신없이 마지막 농번기에 허둥지둥 대고 있는데 뉴스에선 단풍 구경하는 모습들을 부산스럽게 내보내는 걸 보니 속으로 “참, 놀고들 있네!” 한다. 누가 진짜 노는 건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열흘 전에 한로 지나 10월 중순에 밀을 심었다. 작년엔 가을에 비가 제법 내려 배추고 무고 할 것 없이 무럭무럭했고 밀도 파종하고서 금방 싹이 올라왔는데 올해는 가을 가뭄이 너무 심해 배추고 무고 할 것 없이 비실비실한데다 밀을 파종하고서도 걱정만 앞섰다. 그런데 파종하고 일주일이 지나니 뾰족뾰족 싹들이 삐져나온 것이 아닌가? 역시 싹이 터져서 농부에게 주는 기쁨은 참으로 대단하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야!” 하는 감탄이 절로 났다. 마누라고 누구고 간에 전화해서 막 자랑하고픈 마음이 동한다. 요즘 말로 업(up?) 된 마음을 누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포스(force?)는 발아력이 아닐까 싶었다.
괭이로 골을 내고 밀씨를 이른바 “뭉텅이 직파법”으로 20~30알씩 뭉쳐서 넣고는 잘 삭은 풀거름으로 흙 대신 덮어주었다. 목발 짚으며 골내는 괭이질이나 일일이 고랑 무너지지 않게 피해가며 씨를 넣는 일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단단히 마음먹고는 즐겁게 일을 해나가는데 올 가을 새로 들어오신 어르신 회원 한 분이 얼른 일을 거든다. 농사는 처음인데 뭐든지 일손이 척척 붙는 분이다. 늘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게 어릴 때 읽은 “톰 소여의 모험”이다. 힘든 일을 재미있다고 자랑하며 마지못해 친구에게 힘든 일을 떠맡기는 톰 소여라는 녀석이 꼭 나 같아서다.
풀거름으로 씨를 덮어주는 것은 피복용이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밑거름도 끝이다. 풀거름이라 질소질을 보강하기 위해 오줌과 쌀뜨물을 부어준 거름이었다. 아마 그래도 질소질은 모자랄 것으로 보고 내년 봄에 두세번 오줌 웃거름을 잔뜩 뿌려줄 계획이다. 아무튼 흙 대신 풀거름을 덮어주었더니 이슬이 더 잘 맺히고 또 건조도 막아주어 발아가 제대로 되었을 것 같다.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아침에 나가보니 참나무 가지가 드리워진 뒷간 쪽은 이슬이 적게 내려 확실히 발아가 덜 되었다.
밭벼는 수확해보니 일찍 심은 줄뿌림 벼보다 한 달 늦게 심고 양도 적게 심은 뭉텅이 직파벼가 수확량은 두 배 가까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수확하기 전 이 뭉텅이 직파벼를 보더니 “꼭 논벼처럼 이삭이 달렸네” 한다. 그러고 보니 진짜 논벼 처럼 무성하게 이삭들을 달고 있다. 잘된 이삭 하나를 골라 이삭수를 세어보니 151알이 달렸다. 논벼도 보통 150알이 넘으면 잘 된 것이라 하는데 밭벼가 이 정도 달렸으면 잘 되기는 잘 된 것 같다. 내년엔 무조건 뭉텅이 직파법으로 심을 의지를 다져본다. 다만 알 수를 10~20알 쯤으로 줄이려 한다. 30~50알쯤 넣은 것은 잘 되기는 했지만 너무 베어서 서로 치인 것 같아서다.
들깨는 작년에 비해 반 정도밖에 안 심었는데 수확량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벼를 심다가 자투리 땅이 남아 아무 생각 없이 들깨 모종을 꽂은 것인데 꽂고 나서 보니 영 면적이 작아 보여 저걸 갖고 뭐해 먹나 했다. 나는 왜 이렇게 개념이 없나 하고서 방치하고 있다가 생각해 보니 밑거름도 넣지 않았는데 어느새 풀에 치이고 있어 미안한 마음으로 얼른 풀을 매고 작년에 풀로만 만든 풀거름을 웃거름 주듯이 주었다. 들깨에게 해 준 것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자라는 것을 보니 역시 거름이 적어 덜 자라는 것 같은데 꽃 달리고 이삭 달리는 것을 보니 자란 것에 비해 꽤 달린 느낌이다. 위기에 처하면 새끼를 많이 단다더니 제 놈 먹을 게 모자라서 새끼들을 많이 단 것이 아닌가 싶다.
올해는 고추고 배추고 간에 모종 농사를 실패만 거듭했는데 마지막 양파 모종 농사도 꽝 났다. 벌써 볼펜 굵기만 해져야 하는 양파가 아직도 젓가락 굵기만도 못했다. 만든 상토에 석회를 넣지 않아 강산성인 피트모스의 피해를 본 데다 씨도 한 구멍에 여러 알을 밀식하는 바람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중간에 또 깊게 생각지 않고 오줌 웃거름을 주었더니 그게 더 화를 키웠다. 두 번이나 주고 나서 이끼가 끼는 것을 보고는 정신차리고 숯가루와 목초액을 뿌려주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정식할 때는 가까워 오는데 반은 죽은 이제 와서 솎아주자니 아깝고 임시로 가식하자니 괜히 옮겨심느라 타격만 받을 것 같아 고민하는 중에 우리 농장에서 제일 상농부인 회원이 왔기에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금 그냥 정식하면 어떨까요? 가식하면 오히려 더 위험할테고 아직 날이 따뜻하니 서리 오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자라지 않겠어요?” 한다. “이야, 그거 일리 있네요.” 하고는 바로 정식에 들어갔다. 괜히 기분이 그래선지 모르겠지만 어제 그제 비를 맞고는 양파 모종들이 힘을 받은 것 같아 나도 덩달아 힘을 받는다.

입동, 겨울 준비에 바쁜 김장철
겨울이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다. 하지만 겨울이 들어서는 느낌보다는 늦가을 단풍이 절정인 계절이다. 올해는 상강이 지나 입동 3일 전, 11월 4일에 된서리가 내렸으니 온난화 영향이 확실한 것 같다. 기온은 따뜻해졌을지는 몰라도 날은 아무튼 겨울 준비에 들어가는 철이다. 입동 전에 겨울 작물들은 파종을 다 끝내야 한다. 밀, 보리와 아울러 마늘, 양파가 그것들이다. 아울러 이제 김장과 겨울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예전엔 입동이 되면 무를 캐서 무청은 시래기 엮고 덜 자란 무로 동치미와 짠지를 담고, 김장에 쓸 남은 무는 땅에 묻었다. 배추는 묶어주었고 알타리는 수확해 총각김치를 담갔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농번기의 마지막이 끝나지 않은 셈이다. 김장 준비와 아울러 또 준비해 둘 일은 메주 쑤기다.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쑤고 볏짚으로 묶어 걸어두었다. 볏짚에 있는 황색균으로 메주 발효를 돋기 위해서다.
사람도 겨울 준비에 바쁘지만 온누리 뭇 생명들도 겨울 채비에 바쁘다. 낙엽수들은 겨울을 대비해 영양분 소모를 줄이기 위해 잎들을 떨어뜨리고 풀들은 다음 해를 기약하며 누렇게 사라지고 벌레들도 알을 까고 사라지며 겨울을 나는 작은 생명들은 동면에 들어간다. 입동 날 날씨가 추우면 겨울이 춥고 날이 따뜻하면 겨울이 따뜻하다 했다. 올 입동이 따뜻했으니 이번 겨울은 아마도 따뜻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입동이 음력 9월에 들면 그 해 겨울이 춥지만 음력 10월에 들면 따뜻하다 했는데, 음력으로 10월 7일이 입동인 것을 보면 이래저래 올 겨울은 따뜻할 것만 같다. 동지 날씨가 추우면 겨울이 춥다 했으니 마지막으로 동지 날씨를 기다려 보아야겠다. 아무튼 옛 조상들은 9월 입동이 드는 해에는 날이 일찍 추워지기 때문에 일찍 영그는 올 곡식이 좋고 10월 입동이 드는 해에는 늦게 추워지기 때문에 늦게 영그는 늦 곡식이 좋다 했다.
입동 전에 심은 보리가 가위처럼 두 개로 갈라져 나오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했는데 아마 추위가 늦어지면 보리 싹이 두 개로 갈라질 정도로 더 많이 자라 겨울을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속담이 나온 것이리라. 또한 입춘 때 보리 뿌리가 세 개면 마찬가지로 풍년 든다고 했는데 그만큼 뿌리의 힘이 좋아 잘 자랄 수 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까 겨울 추위가 좀 늦어지거나 따뜻하면 보리 농사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올 해는 자꾸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져 영 농사가 순조롭지 못하다. 밀도 세 번에 걸쳐 심었는데 아직 못 심은 땅이 남아 있어 내일이나 모레쯤 심어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제일 먼저 심은 게 10월 15일이었으니 거의 한 달 차이가 날 참이다. 처음 심은 놈은 벌써 한 뼘 만큼 자라있으니 실로 나이롱 농사라 할만하다. 그뿐이 아니다. 마늘도 몇날 며칠에 걸쳐 심고 있는데 씨 마늘 세 접밖에 되지 않는 것을 네 번에 걸쳐 일주일 동안 심게 생겼다. 나의 농은 농사 농(農)가가 아니라 나이롱 농자라 해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입동은 우리의 추수 감사절에 해당하는 철이다. 마지막 수확철이자 겨울 준비에 들어가는 철인지라 수확을 끝내고 조상께 감사하는 제사를 지낸다. 입동 즈음한 음력 10월 15일이 되면 조상들께 시제를 지내거나 떡을 하여 고사도 지낸다. 음력 10월 보름은 하원(下元)이라 하여 도교의 삼원(三元)이라는 명절의 하나인데 상원(上元) 대보름, 중원(中元) 백중절이 그 나머지다. 이렇게 조상들에게 감사한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살아계신 어르신들께도 감사한 행사를 치루는 풍습이 있었다. 치계미(雉鷄米)라 해서 마을 어른들에게 각종 맛있는 음식을 차려 들여 양로 잔치를 하는 예도 있었다. 차려 들일 음식이 제대로 없으면 도랑탕이라 해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바치기도 했단다. 추어탕은 가을에 먹는 별미로 동면에 들기 위해 영양분을 잔뜩 섭취한 미꾸라지로 노인들의 보양식을 삼은 것이리라. 아마 추운 겨울을 나기 힘든 노인들에게 좋은 보양식을 바쳐 겨울을 무사히 나시라는 효심의 발로였을 게다.
붙박이 농경사회에서 노인들의 역할이란 가히 절대적이라 할만하다. 붙박이 사회는 순환사회이기에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야 말로 그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절기력을 공부하면서 제일 의문스러운 것은 12진법과 60진법의 기원이었다. 절기력은 12개의 절(節)과 12개의 중(中)으로 나눠진 것으로 이 가운데 절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기에 12진법에 근거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루를 12시로 나누고 일년을 12달로 나눈 것은 12지지(地支)에 근거한 것으로 이 또한 12진법에 해당한다. 60진법은 해를 60갑자로 나눈 것과 하루 하루 날 또한 60갑자로 나눈 것에서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서양의 진법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시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한 주기를 12시로 나눈 것에서 12진법이 드러나고, 60분을 한 시간, 60초를 1분으로 삼은 것에서 60진법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12진법과 60진법은 동서양 공통 진법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진법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동양에서는 약 3천년 전 중국 갑골문에서 최초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진법들의 유래는 당연히 밤하늘 천문이었을 것이라 하여 막상 천문에서 찾으려 하니 12진법에 근접하고 있는 목성의 12년 주기 말고는 60진법의 유래는 찾을 수가 없었다. 목성은 밤 하늘에서 달 말고는 제일 빛나는 별이었다. 그 주기가 12년이어서 12지지 주기와 같아 세월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별, 곧 세성(歲星)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목성을 기준으로 연대를 표기한 것을 세성기년법이라 했는데 중국 진나라에서 사용했다. 그러나 60진법의 유래를 밤하늘 천문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별자리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뒤져보기도 하고 천문 전문가에게 자문도 해보고 천문 전문 사이트를 뒤져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왜 동양에선 60갑자를 썼고 서양의 시계에서는 60을 시간의 기본 단위로 삼았을까?
답은 의외의 곳에서 아주 쉽게 찾아졌다. 다시 12진법을 고민해보았다. 앞에서 말한대로 12년 주기의 목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하기에는 개운치 않은 점이 있었다. 목성은 아무리 밝은 별이라 하나 금방 피부로 느껴지는 별은 아니지 않은가? 뭔가 더 분명한 것이 있고 난 뒤에 목성의 주기를 발견했을 것 같았다. 바로 달의 주기였다. 12달.....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밀농사 지역이었다. 그들은 밀이 추운 겨울을 지나 언제 다시 부활하듯 올라오느냐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그들의 주요 식량이니까. 또한 더불어 가축들의 식량인 목초가 언제 밀처럼 솟아 올라오느냐도 중요했을 것이다. 그것은 춘분이었다. 춘분이면 낮이 더 길어지고 날씨도 따뜻해져 온갖 생명들이 소생하는 철이다. 그래서 그들은 춘분은 새해의 시작으로 삼았고 그 영향을 받은 기독교에서는 춘분을 예수 부활의 기점으로 삼았다. 그 춘분을 손꼽아 기다려보니 대충 달이 12번 돌면 돌아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까 아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달의 일년 12달 주기를 알고 나서 목성의 12년 주기를 발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럼 분명 60진법도 아주 가까운 곳에 그 유래가 있을 것이라 추론했다. 달 말고 가까운 것이 있다면 무얼까? 태양?....! 태양의 주기는 365일인데, 이것으로는 맞아 떨어지는 그 무엇을 찾을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하고 수학 교사인 아내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12진법이 달에서 유래한 것처럼, 60진법이 태양에서 유래했다면 딱 얘기가 될텐데 365일로는 끼워 맞출 수가 없단 말야.....” “옛날 사람들은 일 년을 360일로 생각했데. 그게 360도 원 각도의 유래야.”
“어!! 그래? 360도를 6으로 나누면 60도인데. 그럼 60진법이 되잖아, 그걸 어떻게 해석할 수 있지?” “원에 내접하는 육각형을 그리면 정삼각형 6개가 합쳐진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 삼각형 변의 길이는 바로 원의 반지름과 같거든.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6을 원을 나누는 기본 단위로 보았고 하필 6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라는 거였어.” 365일이 아니라 360으로 보니까 참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사실 태양의 주기는 타원 주기이므로 완전 원이 아니니까 편차가 생긴 것이리라. “원을 삼등분으로 시작해 배수로 나누면 360도->120도(3등분)->60도(6등분)->30도(12등분)->15도(24등분)에서 정수로 끝나고 사등분을 이용해 나누면 360도->90도(4등분)->45도(8등분)에서 끝나는데 이 45도를 15도로 나누면 3배가 되므로 마찬가지로 24등분을 만들 수 있어.” “그래 맞다. 그게 24절기야.”
“그렇지만 원은 10등분하기가 쉽지 않아. 자로 재지 않고서는....그러니까 10진법은 열 손가락 말고는 별로 자연적인 진법이라 하기가 그렇지.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람 손가락도 12개가 되었어야 자연스러웠을 거라고 하기도 했대.” 현대 진법이라 하는 10진법이 고작 열 손가락에서 기원한 것이라니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60진법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어 매우 기분이 좋았다. 몇 년 동안의 숙제를 풀 수 있었으니 속이 다 후련했다. 역시 농사든 절기력이든 진법이든 인간에게 해와 달은 모든 것의 좌표가 되는 것 같다.
소설, 길고 긴 겨울의 시작
입시 추위라는 말은 알아도 소설 추위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 대개 대학 입시 치루는 날이 소설 직전인 경우가 많다. 입동과 소설 중간 쯤이거나 소설 바로 못 미쳐 온다. 그러니까 입시 추위는 소설 추위라고 봐야 옳다. 입동이 추운 경우도 있고 따뜻한 경우도 있지만 소설엔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춥다고 했다. 며칠 전 별안간 찾아온 추위도 소설 추위라고 봐야 한다. 영하 7도씨까지 내려간다 하니 무는 무조건 얼어 죽을 것이고 배추도 끈으로 묶어주었다 해도 불안한 기온이었다. 부랴부랴 텃밭 회원들에게도 경고 메시지를 올리고 나도 전날 배추를 묶어주었지만 불안하여 서울 일 끝내고 급하게 내려와 천막으로 덮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통풍도 잘되고 양지 바른 곳의 배추들은 묶어준 덕에 별로 얼지 않았지만 통풍이나 일조량 조건도 좋지 않은데다 습한 곳의 배추들은 바로 동해 피해를 보았다. 배추만이 아니라 식물들은 겨울 나기를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자기 몸 속의 수분을 배출하는 것이다. 몸속에 수분을 가득 담고 있으면 추위에 바로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습한 곳인데다 갑작스럽게 기온이 급감하니 수분 배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배추는 적당히 얼어도 그냥 놔두면 다시 풀려 제 모습을 찾아오는데 아주 얼어버리면 기온이 풀리면서 녹아내린다.
아무튼 소설 추위는 본격적인 겨울을 알리는 자연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 같다. 겨울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 한겨울은 아니다. 따뜻한 기운이 약간은 남아있어 평균 기온이 5도씨 정도이다. 그래서 옛날엔 소설을 소춘(小春)이라 할 정도로 그 따뜻한 기운을 표현했다. 그렇지만 겨울이 왔음을 또한 분명히 해야 할 터, 갑작스런 소설 추위로 그 경고를 알리는 것이리라. 소설 추위에도 불구하고 다시 평균 기온을 되찾지만 이후에는 급격하게 겨울 기온이 밀려든다. 옛말에 “초순의 홑바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처럼 하루가 다르게 날은 추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소설 전후로는 완벽하게 월동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직 김장을 담그지 못한 사람도 이때를 놓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김장을 담가야 한다. 요즘은 온난화 영향 때문인지 추위가 왔어도 금방 다시 따뜻해졌으니 좀 늦어져도 괜찮을 듯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옛말에 소설 때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는 말이 있다. 입동 때는 따뜻해서 보리 순이 두 갈래로 갈라질 만큼 잘 되었지만 소설 때는 추위가 찾아와 보리가 웃자라지 않고 겨울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어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겨울 준비 중에는 역시 겨우내 먹을 것 챙기는 일이다. 먹을 것에는 대표적인 것이 김장과 메주이지만 그 말고도 중요한 것은 각종 묵나물들이다. 무청으로 시래기를 엮고, 김장 담고 남은 무로는 무말랭이를 만든다. 무는 이런 묵나물 말고도 중요한 먹을거리가 있다. 동치미아 무짠지가 그것인데 특히 무짠지는 나른한 봄날 군침을 돌게 하는 대표적인 식욕 돋우는 음식이다. 늦가을에 열린 어린 애호박은 된서리 오기 전 썰어서 호박고지 만들고, 고구마 줄거리도 된서리 전 삶았다가 말려 묵나물 만든다. 가지도 서리 오기 전에 남은 것들 따다 길죽하니 찢어서 말리고 토란도 줄거리를 다듬어 살짝 껍질 벗겨 말려둔다. 그 외에 고춧잎, 고사리, 고비 묵나물을 비롯해 산간지방 산나물로 만드는 묵나물까지 더하면 무궁무진한 게 우리네 겨우내 먹을거리들이다.
요즘은 비닐하우스 농산물이 많아져 겨울에도 따뜻할 때의 채소들을 즐겨 먹는다. 나는 이게 참으로 사람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이란 자연의 뭇 기운을 머금고 자라야 하는 것일텐데, 단지 영양학적인 접근으로 외부와 차단하여 강제로 키운 음식이 제대로 된 것일 수 있겠는가? 자연을 배제한 음식을 아무리 유기농 이상 가는 농법으로 키운 것이 과연 우리 몸에 좋을 수는 없다고 본다. 겨울에는 겨울답게 뭐든지 적게 움직여 에너지를 줄이고 겨울다운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겨울에 음식을 먹고 여름에는 겨울 음식을 먹는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삶이겠는가?
건강이란 균형적인 삶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 겨울에 런닝 차림으로 살 수 없는 것처럼 한 여름에 두꺼운 내복을 입고 살 수 없는 것처럼, 겨울은 겨울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살 때 자연과 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철을 잃어버린 음식은 그 영양이 아무리 좋다 해도 자칫 우리 몸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즐겨 먹을 일이 못된다.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오래 동안 중국집을 해온 분이 옛날식 짜장면이라는 것의 허구를 꼬집은 얘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옛날 짜장면은 겨울이 되면 들어가는 채소 재료가 거의 무말랭이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농사가 없던 옛날엔 겨울 채소라고 해 봐야 묵나물 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겨울이 되어도 여름 채소들이 잔뜩 들어간 요즘 겨울 짜장면을 옛날 짜장면이라고 하면 그것은 허구라는 지적이다.
소설 전에 해야할 겨울 준비 중에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으로는 채종 준비다. 겨울을 나야 꽃대가 올라오는 작물들은 단단히 월동 준비를 해 주어야 한다. 십자화과 작물들이 대표적이다. 배추, 무가 그것이다. 제일 쉬운 방법은 뿌리를 잘 모아 땅에 묻었다가 봄 되면 꺼내 심는 것이다. 이때 뿌리를 줄기에서 자를 때 뿌리의 살이 많이 도려지면 안된다. 뿌리 윗 부분에 생장점이 몰려 있어 그 부분을 잘라내면 새순이 돋을 수 없다. 살짝만 도려내어 보관했다가 내년 봄 춘분 즈음해서 꺼내보면 윗부분에서 새순이 돋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그대로 옮겨 땅에 심으면 꽃대가 올라온다.
다음으로 쉬운 방법은 땅에서 뽑지 말고 적당히 씨 받을 놈을 골라 위부분 줄기만 살짝 도려내고 남은 뿌리가 얼지 말도록 왕겨나 검불들로 덮어주는 것이다. 다음해 춘분 때 살짝 벗겨주면 새순이 돋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배추나 무나 꽃대가 올라오면 씨가 의외로 많이 달린다. 쓰러질 우려가 있으니 지주를 박아 지탱해주면 좋다. 씨 깍지가 몇 개만 누레지면 전체적으로는 파래도 낫으로 베어 양파 망에 담아 거꾸로 매달아둔다. 배추와 달리 무는 씨 깍지가 바싹 말라도 잘 벗겨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무는 베어서 바로 말리지 않고 거적때기 같은 것으로 하루 이틀 정도 덮어두었다가 껍질에 곰팡이를 슬게 한 다음 말린다. 곰팡이가 껍질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나중에 씨를 채집하기 쉬워진다. 오래 덮어두면 곰팡이가 씨까지 공격하여 씨를 망가뜨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대설, 비로소 농한기
농한기가 왔다고 자꾸 원고 쓰는 것도 늦어진다. 대설이 지난 지 이틀이나 되었는데 이제야 긁적인다. 막상 쓰려고 하니 별로 쓸 내용이 없다. 밭 일도 거의 끝나고 할 일도 없으니 글 쓰는 일도 뭉그적거렸나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밭에 할 일이 남아 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콩 탈곡을 아직 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낫으로 베어놓고 비닐집에 널어놓고는 토종 수집하러 다닌다고 내 팽개쳐 놓는 게 한달은 지난 것 같다. 많지도 않은 양이지만 꼴에 서리태, 메주콩, 쥐눈이콩 세 종류나 되어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오랜만에 시간이 나니 원고 빨리 쓰고 밭에 가서 그 놈들을 두들길 참이다.
소설 추위가 지나고 봄 날씨처럼 따뜻하더니 대설이 가까워 오자 영하 10도 이하의 매서운 동장군이 들이닥쳤다. 게다가 이름답게 대설인 12월 7일에는 눈까지 내렸다. 결혼식이 있어 아침에 차 끌고 나가는데 눈이 제법 내려 여기저기 교통사고다. 하지만 대설이라 하기에는 적은 양인데다 그것마저 금방 녹고 말았다. 오후에 밭에 가니 거의 흔적도 없이 말라있다. 대설 때 내리는 눈은 보리의 이불이라 했는데 보리 입장에선 이불 구경만 한 꼴이다. 오히려 더 춥다. 에스키모인들이 눈 집을 만들어 살았듯이 겨울엔 눈이 작물들에게는 보온을 해주는 이불이자 눈은 녹으면 소중한 물이 되어준다.
대설 근방이 되면 농가에선 곳간에 먹을거리들이 그득하다. 곡식 수확도 끝내 갈무리 저장해두었고 김장도 담가 놓았으니 한동안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 이런 때에 토종 수집을 다니는 것 또한 적기를 놓치지 않은 것이리라. 토종 박사님과 전통농업 공부하는 바람들이 농장 막내 농부와 함께 강화도로 떠났다. 토종은 수량도 적고 균일하지도 않아 상품성이 떨어진다. 토종이 시장에서 도태되고 농가에서도 외면 받아온 절대적 이유였다. 파는 농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선 토종을 갖고 있다는 게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토종을 잊지 못한다.
다녀보니 토종을 아직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오래된 집, 집 주변에 텃밭이 있는 집, 교통이 좋지 않은 외진 곳, 노동이 가능한 6, 70대 할머니들이다. 특히 노인 부부가 함께 농사짓는 경우라면 더 좋다. 반대로 대로변에 있는 집, 새로 지은 집, 기계로 큰 농사를 짓는 집, 비닐 온실 농사를 짓는 집, 비교적 젊은 농부들과 종자에 별 관심없는 할아버지들을 만나면 토종을 갖고 있는 분은 거의 없다. 곰곰이 새겨보면 여러 가지를 시사하는 점들이다. 오래된 집일수록 낡고 허름할지라도 오래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산다. 그 중에도 특히 여자들이 종자 관리를 잘한다. 우리의 토종은 여성들이 지켜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자들은 그저 힘쓰는 일이나 잘하지 생명을 가꾸고 아끼는 일에는 영 젬병이다. 또한 토종의 진가는 역시 어르신들이 잘 안다. 그 맛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득을 주목적으로 농사를 지으면 토종은 귀찮은 존재다. 소득 농사를 하더라도 집에서 먹는 것은 토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농약 친 것은 시장에 내다 팔고 집에서 먹을 것은 농약 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런 토종을 재배하려면 집 주변에 꼭 텃밭을 일구어야 한다. 대량 재배도 안되고 그야말로 다품종소량생산으로 가야 하며 집에서 먹는 거라 가까울수록 돌보기 좋은 것이다. 집에서 먹는 것인데 비싼 돈 주고 시장에서 맛도 없는 씨 사다 심을 리 없지만 교통도 불편하다면 더욱 시장에서 씨 사다 심을 리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토종을 많이 갖고 있는 분일수록 농사를 참으로 즐겁게 짓는다는 것이다. 집도 깨끗하고 마음도 너그럽다. 대개 농심이 그랬듯이 불쑥 찾아든 불청객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많은 씨를 빚 받아 가듯 하니 “밭에서 그냥 일하고 있을 걸, 내가 괜히 뛰어 왔네, 이렇게 많이 가져가니 말이요.” 하다가도 챙길 것 다 챙겨 나가려는데 감 먹고 가라 커피 먹고 가라 하며 쉬이 나주질 않는다. 어느 집에는 점심 때라 하며 금새 국수를 말아 오시기도 했다.
거의 농사를 예술처럼 한다 싶은 집에서는 부엌 벽에다 벼의 이삭을 매년 매달아 놓아 어느 해 농사가 잘 되었나 보곤 한다는 분이 있었다. 종자도 다양하게 갖고 있었지만 희귀한 종자도 적지 않다. 이것저것 종자 자랑이 끝이 없다. 종자를 챙겨줄 때마다 그 아줌마 내 뱉는 말이 참으로 재밌다. “종자는 아들 귀하게 여기 듯 해야 되!” 한다. 처음엔 가부장 잔재의 어르신다운 말씀이라 했지만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종자나 이 종자나 다 같은 종자이니 그럴 법도 하여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마지막으로 들른 아주 허름한 고택의 할머니는 토종 신세만큼이나 쓸쓸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 집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도시의 자식들이 도시로 나오라 해도 그냥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이런 집 3년도 못가 다 쓰러져요. 늙어빠진 나라도 있어야 집 꼴을 하고 있지.” 하신다. 그런데 그 집이나 우리가 찾고 다니는 토종이나 그것을 죽은 아들 부랄 만지듯 지키고 계신 그 할머니나 다 비슷한 꼴인 것 같기만 하니 귀한 종자 얻어 나오면서도 맘이 편치 않다. 속절없이 스쳐가는 바람처럼 등 돌리고 나가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여느 순진한 농부의 눈빛을 머금고 쓸쓸한 손짓 인사를 건네신다.


동지, 깊은 겨울밤 떠오르는 새해
절기를 알고부터는 왠지 절기 음식을 그냥 넘기기가 찜찜하다. 그렇다고 애절하게 기다리지는 않았는데 졸지에 외식 차 들른 식당에서 팥죽을 내왔다. 그걸 보고서야 동지임을 반갑게 실감했는데 아직 쓰지 못한 동지 원고를 생각하니 즐거운 마음도 이내 흩어지고 만다. 팥죽은 붉은팥을 물에 불려 갈고 찹쌀을 새알처럼 빚은 새알심을 넣고 죽을 만든 것이다. 새알심은 해를 뜻하고 붉은 팥죽은 검은 밤을 뜻하여 검은 밤에서 새해가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을 먹는다고 한 것도 깊고 검은 밤 중에 갇혀있는 새알심을 먹어야 새해 곧 새 한 살을 먹는다는 것이었으리라.
또한 팥의 붉은 색은 벽사(辟邪)의 기운을 쫓아내는 효험이 있어 음귀(陰鬼)를 쫓는다고 믿었다. 붉은 색은 따뜻한 양의 기운을 대표하니 음이 가득한 겨울의 찬 기운을 밀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팥은 따뜻한 기운을 오래 머금는 능력이 있어 팥을 이용해 찜질하는 민간요법이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게다가 부종(浮腫)이나 어혈(瘀血)을 다스리는 데 해독 능력이 뛰어난 팥으로 찜질을 하면 의외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팥에는 해독 능력이 뛰어난 사포닌이라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것을 보지 않아도 익히 우리 조상들은 알고 있었던 듯하다. 동지는 세가지로 나누었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라 했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 했다. 애동지에는 팥이 들어간 시루떡을 해 먹고 노동지에는 팥으로 죽을 쑤어 먹는데 중동지에는 둘 중에 하나를 해 먹는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어서 해가 밤에 갇혀 죽는 날이고 동지가 지나면 죽은 해는 다시 살아나 낮이 밤을 이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옛날엔 동서양 공히 동지를 새해의 시작으로 보기도 했다. 중국의 고대 국가인 주(周)나라에는 동지를 설날로 삼았고 서양에서는 예수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를 동지 근방으로 잡아 새해의 기점으로 삼았다. 우리는 예부터 동지를 작은 설날(아세亞歲)이라 하여 정월 설날만큼 동지의 의미를 새겼다.
24절기 중 제일 중요한 절기는 역시 동지다. 방금 소개한 것처럼 동지는 새해의 기점이어서 옛날엔 24절기의 시작을 동지로 삼았다. 지금처럼 입춘을 24절기의 시작으로 삼은 것은 농경문화가 일반화되면서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입춘 때 다루도록 하겠다. 달력의 제정은 나라님의 가장 큰 사업이었다. 그래서 어디든 천문과 달력을 연구하는 기관은 임금이 직접 지휘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임금의 직속기관인 관상감(觀象監)에서 동지가 되면 새해 달력을 만들어 임금께 바치고 이를 임금이 어새를 찍어 전국 각 지방에 돌렸다고 한다. 지금도 동지가 되면 달력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갖는 풍습은 바로 이런 전통에서 내려온 것이다. 로마에서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고대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미트라교(Mithfaism)의 동지축제가 매년 행해지고 있었는데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로는 이를 예수의 생일로 삼아 크리리마스 축제로 변형시켰다.
동지는 긴긴 겨울의 한 복판이다. 해가 가장 짧은 날이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긴 밤을 지내면 해가 다시 길어지니 해가 부활하고 살아난다 하여 해의 생일이라고도 했다. 이런 동지날의 날씨는 새 해의 날씨와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좌표가 되었다. 동지날이 따뜻하면 이듬해 질병도 많고 농경지에 병해충이 많다고 했다. 추운 겨울날엔 겨울답게 날씨가 추워야 병해충도 얼어 죽을테니 당연히 추워야 한다. 추위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냉정한 청소꾼이다. 조상들 성묘 가서 벌초할 때 말벌에게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많은 해는 지난 겨울이 반드시 따뜻했다. 벌들이 겨울을 잘 견뎌 많이 살아남은 것이다.
동지가 되면 사람들 마음이 바쁘다. 지난 해 바쁜 핑계로 밀어두었던 숙제들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지 이후는 세모(歲暮), 세밑이라 한다. 세모가 되면 그동안 불편하여 소원했던 이웃 간에도 마음을 열어 화합을 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준다. 구세군 자선냄비 때문에 우리의 아름다운 세밑 풍속이 서양에서 온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동기야 어떻든 많은 사람들이 자선 모금에 나서는 것도 이웃을 먼 친척보다 가깝게 여기는 우리의 훈훈한 공동체 문화라 하겠다.
길고 긴 동지, 섣달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그런데 꼭 무엇인가 해야 할까? 나는 겨울잠 자는 자연의 동물들을 생각해보았다. 뱀, 곰, 개구리 같은 동물들은 겨울잠을 자는 반면 벌레들은 알을 낳아 자신은 겨울 되기 전에 생을 마감한다. 어떻게 보면 모두 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먹을 것도 귀하고 날씨도 추우니 겨울 오기 전에 먹을 것을 충분히 섭취한 다음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겨울잠을 자는 것이다. 자신은 가고 알을 남겨 겨울을 나는 벌레들도 넓게 보면 마찬가지의 겨울나기 전략이다.
반면 겨울을 여름처럼 날 뿐만 아니라 여름도 겨울처럼 시원하게 보내는 인간만은 먹을 게 넘쳐나고 에너지가 넘쳐나서 그러는 걸까. 아무튼 먹을거리와 에너지가 그렇게 넘쳐난다고 해서 맘껏 물 쓰듯 막 쓸 수 있는 것인가? 겨울은 겨울인데, 겨울을 여름처럼, 여름을 겨울처럼 난다면 그 에너지와 먹을거리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먹을거리나 에너지는 영원히 무궁한 것이 아니다. 결국은 자연의 다른 생명의 것을 빌려오든가 후손에게 물려줄 것을 미리 가져다 쓰는 것일텐데 그렇게 마구잡이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자격증은 누가 준 것인가? 그런 자격증이 있다면 유럽 중세 시대 천국 가는 티켓과 비슷하게 황당무계한 것 일뿐이다.
겨울은 겨울답게 나는 것, 나는 가능하다면 동면하는 동물들처럼 겨울잠을 자는 것도 좋은 겨울나기일 것 같다. 아마 스님들이 동안거 들어가는 것도 같은 이치이지 않을까. 하는 말이 그렇지 겨울잠을 잔다든가 동안거 들어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대한 그에 맞게 겨울에는 먹을 것과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지나 온 한 해를 반성하며 새해를 차분하게 맞이하는 것이 건강한 겨울나기가 아닐까 싶다. 망년회로 술에 빠져 세밑을 보내고 취한 정신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러 밭에 나가 미처 손이 가지 못한 곳 청소도 하면서 둘러보고는 집에 들어와 짚신을 꼬며 오랜 전설 이야기를 도란도란 주고 받는 깊은 겨울밤이 참으로 부러운 것은 결코 중년의 나이를 먹은 탓만은 아닐 것 같다.
소한, 춥고 긴 겨울 농한기
동지가 지나고 양력 정월도 찾아왔으니 새해가 된 것이지만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소한, 대한이 있어 새해라고 해 봐야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다. 역시 음력 설날이 되어야 날도 풀리기 시작하니 새해 기분이 든다. 그래도 동지가 지나서인가 아침 해 뜨는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기는 한다. “동지 지나면 해가 사슴 꼬리만큼씩 빨리 뜬다.”는 말이 있다. 하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다 동지 근방에 오면 빨리 돈다. 타원으로 돌기 때문인데 반대로 하지 근방에서는 늦게 돈다. 동지에서 입춘까지 59일이 걸리면 하지에서 처서까지는 62일 걸린다. 동지에서 3일이나 빨리 도는 것이다.
날씨가 추우니 마음도 움츠러들고 스산한데 다행히 조금씩 빨라지는 아침 해로 위안을 삼는다. 꿔서라도 오는 소설 추위로 겨울이 본격 시작한다고 했듯이 꿔서라도 반드시 오고야 마는 소한 추위는 겨울의 맹위를 떨치기에 모자람이 없다. 대개는 소한 지나 양력으로 1월 중순 근방에서 큰 추위가 오곤 한다. 말하자면 소한 기간에 큰 추위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소한 추위와 관련한 속담은 참으로 많다.
이름대로 하면 더 추워야 할 대한(大寒)이 소한(小寒)이네 놀러와 죽었다든가,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 없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소한이 대한 네 집에 몸 녹이러 간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이 대한 잡아먹는다, 들의 속담은 다 소한이 대한보다 춥다는 의미에서 온 것들이다. 그래도 역시 소, 대한 추위야 말로 겨울을 대표하는 맹추위의 절기다. 춥기만 한 게 아니라 건조하기도 하여 겨울을 나는 작물들에게 때론 가뭄 피해를 주기도 한다. 고온다습한 여름과 반대로 저온건조한 우리 겨울날씨의 특징이다. 반면 목초가 발달한 유럽이나 유목지대의 겨울은 중온다습이라 할까, 영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서 비는 자주 오고 습하여 겨우내 목초가 죽지 않고 잘 자란다. 밀, 보리와 가축이 잘 되는 이유다.
우리의 겨울은 눈이 오지 않으면 겨울 가뭄의 피해가 심각하다. 겨울을 나는 보리, 밀, 양파, 마늘 같은 작물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물이 모자라 봄 농사에도 치명적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온난화 때문인지 별로 춥지 않은 날은 지속되는데 눈은 별로 오질 않아 겨울 가뭄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다. 겨울만 지나면 주변 저수지의 수면이 밑으로 푹 꺼져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무튼 겨울을 대표하는 소한, 대한 추위는 꼭 추워야 한다. 그냥 추워서도 안된다. 삼한사온(三寒四溫)처럼 추워야 자연의 생태계가 건강해진다. 추웠다가 따뜻해지길 반복하면 자연은 저절로 청소가 된다. 따뜻해서 잠깐 얼굴을 내민 병해충들이 곧 밀어닥칠 맹추위에 얼어죽는다. 병해충만이 아니라 약한 생명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건강한 놈들만 살아남는다.
또한 삼한사온이 반복되면서 흙도 부드러워진다. 물을 머금은 흙은 얼면 부피가 늘어나는 물의 특성 때문에 흙이 더 잘게 부숴진다. 바위가 흙이 되는 원리다. 만약에 물이 얼음이 되어 부피가 늘지 않고 줄어들었다면 흙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흙만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생명의 지구도 생명이 살지 못하는 다른 모습의 지구가 되었을 일이다. 액체가 얼어서 고체가 될 때 부피가 늘어나는 것은 물 뿐이다. 그게 지구를 생명의 터전으로 만든 것이니 다시 한번 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한 겨울 농한기 때는 가을 수확하고 못 다한 갈무리를 한다. 일이 많아 바쁠 때 곡식 같은 경우는 적당히 잘 모아 놨다가 한 겨울 추울 때 사랑방에 앉아 화로에 잉걸불 담아 놓고 갈무리 한다. 곡식을 먹기 좋게 껍질 벗기는 작업을 방아찧는다고 한다. 방아찧는 것에는 쓿기가 있고 빻기가 있고 타기가 있다. 쓿기는 겨를 벗기는 일이고 빻기는 가루를 내는 일이며 타기는 거칠게 가루를 내는 일이다.

방아찧는 일은 매우 지루하고 고된 일이라 “저녁 방아는 찧어도 새벽 방아는 못찧겠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방아찧고 나서도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 뉘나 쭉정이를 골라내는 일처럼 참으로 귀찮고 짜증나는 일도 없다. 콩 같은 경우는 큰 쟁반에다 깔고서 기울이면 잘 영글은 콩은 둥글둥글해서 잘 굴러떨어지지만 쭉정이는 잘 구르지 않아 그걸 이용해 골라낸다. 처음엔 나름대로 재미있어 작업을 하지만 좀만 지나면 “왜 내가 이런 걸 하고 있지”하고 이내 회의가 든다. 뭉툭하고 거친 손가락으로 그런 걸 고르려 하면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해지기까지 한다.

밀 같은 경우는 탈곡하면 바로 탈립이 되어 구태여 방아를 찧지 않아도 현미처럼 먹을 수 있어 좋기는 하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뉘가 많이 섞여 있다. 돌을 고르기 위해 물에 담가 일르면서 위에 뜨는 가벼운 것들을 골라낼 때 함께 뉘를 걸러내려 해도 이를 완벽하게 골라내기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이도 큰 쟁반에다 깔고서 고르는데 콩에 비해 몇 배나 힘들다. 콩처럼 구르지도 않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는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온 마누라가 도와준다고 나서지만 왠지 미안해 혼자서라도 마저 끝내려 하다보면 참으로 지루하기 그지없다. 노안이 오는 나이가 되어서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아프고 그 X만한 밀알을 두텁고 거친 손가락으로 골라내려 하면 참 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방아찧거나 갈무리하는 일은 섬세하고 잔손질이 많이 가 노인네나 아이들이 도와주곤 했다. 어떻게 보면 노인네에게 그런 일은 거의 PC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알곡들을 골라내다보면 뇌 운동도 되고 시간도 떼울 수 있으니 그만한 재미있는 일도 없다. 그래서 농사는 최소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문화이어야만 제대로 할 수가 있다. 늙은이도 아이도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농사규모가 커서 방아찧을 곡식이 많을 경우는 이웃과 함께 품앗이로 함께 작업하곤 했다. 그래서 방아찧는 노동요가 지역마다 다양하게 발달했다.
방아찧는 도구들은 나름대로 곡식의 성격과 작업 방식에 따라 나눠진다. 곡식 알갱이끼리 또는 곡식과 연장 사이의 마찰로 쓿거나 빻는 일은 절구, 디딜방아, 물방아, 물레방아가 한다. 이와 달리 서로 다른 반대방향으로 연장이 움직여 그 사이에 곡식을 넣고 빻는 일은 쓿거나 타거나 빻는 작업으로 매통, 맷돌, 연자매(방아)가 했다.
곡식이 적으면 절구나 맷돌로도 충분하지만 양이 많으면 디딜방아나 연장방아를 이용한다. 나락을 현미에서 쌀, 곧 백미로까지 찧으려면 디딜방아, 물레방아, 연자방아 등이 좋은데 돌확에 넣고 어느 정도 찧은 다음 키질을 해서 덜 벗겨진 놈들은 다시 넣어 찧기를 세 번은 해야 한다. 이를 세벌찧기라 한다. 세벌찧고 나서도 덜 벗겨지면 물로 적셔 찧는데 이를 대낀다고 한다.
소나 말로 끌었던 연자방아는 작업이 빠르고 쉽게 찧어지는 반면 나락이 잘 부서지기 때문에 보리처럼 껍질이 질긴 경우 쓴다. 그렇다 해도 애벌찧기만 하고 두세벌 찧기는 디딜방아나 절구로 한다. 소나 말을 묶어 돌릴 때 짐승들이 어지러워하기 때문에 눈을 가리고 돌린다. 이 일을 보통 아이들을 시켰다. 매통은 맷돌처럼 위아래가 구분되어 있고 사이에 톱니처럼 요철로 홈이 나있어 그곳을 통과하면서 나락의 왕겨가 벗겨지게 되어 있다. 이것들을 다시 모아 물을 적셔가며 한번 더 돌려주면 백미가 나온다. 수수, 보리처럼 겉껍질이 단단하고 매끄러운 경우도 물을 뿌려가며 불려서 찧어야 한다. 메밀은 맷돌로 찧는다.
대한(大寒), 마지막 추위로 보내는 섣달 그믐날
마지막이라 그런가 대한이 4일이나 지났는데 요번만큼 늦게 글을 쓰기는 처음인 것 같다. 농사도 파하고 뭘 쓸지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이 자료 저 자료 뒤지기만 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일단 모니터 앞에 앉아 본다. 육필로 쓸 때도 일단 원고지 놓고 연필을 들면 생각이 절로 떠오르곤 했던 것처럼 키보드를 두드리기만 하면 뭔가가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아이큐가 세 자리 겨우 턱걸이한 나는 머리가 뇌에 있지 않고 손가락에 있나보다 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 민족은 젓가락질을 잘 해서 머리가 좋다고 했으니 영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또 손가락을 잘 쓰면 머리가 자극이 잘 된다고도 하고, 더 나아가 오른 손을 잘 쓰면 좌뇌에 좋고 왼 손을 잘 쓰면 우뇌에 좋다고 했으니 어찌 보면 머리가 손가락에 있다는 것은 새로운 진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참, 대한과는 전혀 무관한 얘기를 이렇게도 길게 쓰는 걸 보면 ‘안구라’라는 별칭이 썩 부끄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 구라도 입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손가락에서도 나오는가 보다.
대한은 몸을 쓰기보다는 사랑방 아랫목 이불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바구나 늘어놓기 좋은 마지막 농한기다. 대한 추위가 글자와는 달리 소한 추위보다는 그 기세가 약하다고 앞의 소한 글에서 얘기했다. 그래서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했는데 이 글 쓰는 오늘 기온이 영하 9도로 떨어졌으니 대한 날씨가 포근한 것만은 아니다. 저번 주 소한 추위가 물러간 후 바로 봄 같은 날씨가 찾아와 어제까지 겨울 같지 않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대한 동장군이 찾아왔다. 하지만 대한 추위는 소한 추위에 비해 약하기도 하고 길지도 않다. 곧 입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대한 끝에 양춘(陽春) 있다 했다. 대한과 입춘 사이의 날씨 변화를 잘 표현한 말이지만 더 깊게는 큰 고비를 잘 넘기면 평지가 온다는 교훈도 담겨있다. 대한이 지나면 곧 찾아오는 음력 섣달그믐을 두고 우리 조상들은 많은 금기와 교훈을 남기고 있는데 대개 한해의 마지막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예부터 섣달그믐이 다가오면 한해의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고 했다. 밀린 빚이나 빌린 물건도 섣달그믐 전에 갚아야 하고, 되도록 돈도 꾸지 말며 혼인도 하지 않고 연장도 빌려주지 않는 것이라 했다. 꼭 이 말을 알고 있어서는 아니었는데, 어제 밭에 나가 그동안 팽개쳐 둔 일들을 정리정돈했던 것은 설 전에 미뤄둔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 때문이었다. 아마도 예부터 내려오는 풍습이 무의식화된 콤플렉스였을 게다.
아무튼 우리는 대한 지나 섣달그믐이 되면 설날 첫 닭이 울 때까지 밤을 새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일러 수세(守歲)라 했는데 한해를 잘 마무리 하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이게 지금은 양력 그믐날 밤 12시를 꼽아 기다리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풍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새해에 처음 뜨는 해를 보겠다며 동해 바닷가로 높은 산으로 극성스럽게 몰려드느라 아닌 새벽부터 교통체증이 벌어지는 꼴을 보면 볼썽사납기도 하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픈 수세풍속의 한 변형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원래 섣달은 ‘남의달’이라 하여 한해를 조용히 보냈다. 지금처럼 망년회다 송년회다 해서 흥청망청 술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먼 데 나갔다가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섣달그믐이면 집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 “숟가락 하나라도 남의 집에서 설을 보내면 서러워 운다”고 했다. 섣달을 내 것이 아니라 ‘남의 달’이라 하면서까지 조용히 보낼 것을 옛조상들이 가르쳤던 것은 왜일까? 내 생각에는 앞의 동지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겨울은 여름처럼 생기있고 활기차게 보내는 철이 아니라 겨울잠 자듯이 기를 아끼고 저축하며 보내는 철이기 때문이리라. 뜨거운 여름은 모든 생명이 약동하며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철이다. 반면 겨울은 맹추위에다 먹을 것도 부족하여 활동하기 힘든 철이니 조용히 동안거 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철이다. 이를 거꾸로 하면서 살면 과연 생명이 제대로 건강할 수 있겠는가?
겨울을 겨울답게 보내야 내 몸에 좋지 않은 병균이나 기운들이 달아나고 내 몸은 더욱 단련되는 법이다. 그런데 겨울을 여름처럼 따뜻하게 보내면 잠시 편할지는 모르지만 내 몸에 또한 좋지 않는 병균이나 기운도 함께 편하게 남아있어 봄이나 여름이 되면 그 삿된 기운이 내 몸을 망가뜨릴 수 있다. 요즘은 다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한동안 춥다가 날씨가 풀리면 꼭 주변 지인들로부터 부모님 부고장이 날아들곤 한다. 바깥 기운과 소통하지 않고 살다보면 날씨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 생기는 일이지 않을까 심히 우려가 된다. 그래서 날씨가 추울 때면 연로하신 부모님께 전화해서 추울 때보다는 이러다 갑자기 날 풀리면 더 좋지 않으니 춥다고 창문 꼭꼭 잠그고 계시지 말고 아침마다 환풍을 시키라고 당부하곤 한다.
겨울에는 농사를 놓고 지내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종자 관리다. 바빠서 곡간 구석에 처박아 놓은 곡식 종자들을 한가한 틈을 타 다시 잘 정돈을 해야 한다. 탈곡한 곡식들은 뒤웅박이나 씨주머니에 담아두었는데 요즘은 양파망이나 마대자루도 좋다. 상추나 아욱 시금치 오이 호박 같은 적은 양의 채소 종자들은 옛날엔 닥종이에 싸서 보관했지만 요즘엔 편지 봉투에 해도 훌륭하다. 조, 수수, 기장, 옥수수, 고추 등은 이삭이나 열매 채 실로 적당히 꿰어 서늘하고 통풍이 잘되는 처마 밑에 매달아 두었다.
고구마는 한 겨울을 사람과 함께 났다. 고구마는 추위에 약해 사람이 자는 방 윗목에다 여물로 덮거나 왕겨에 ane어 망태나 항아리에 담아 두었다. 이렇게 해서 고구마는 영상 10도 이상에서 보관하도록 하는 반면 감자는 영상 5도 정도면 적당한데 땅 속에 움 파서 묻거나 곡간 한 구석에 얼지 않게만 잘 놔두면 된다. 따뜻하면 싹이 나서 종자로 쓰기에 못마땅해진다. 지난 12월 토종을 찾아 섬 구석구석에 할머니 할아버지 농가를 찾아다녔다. 희한한 것은 종자들을 꼭 한 곳에 보관해두지 않고 여기저기서 꺼내 나오시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종자의 특성에 맞게 적당한 장소에 보관하던 습성이 남아 한 곳에 두질 않고 적당히 이곳저곳에 두었던 것이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지금은 냉장고 없는 집이 없어 잘 갈무리해서 한꺼번에 모아 냉장고에 집어 넣어두면 제일 안전하다. 이 때 제일 관건은 종자를 최대한 잘 말려야 한다는 점이다. 습기가 남아있으면 냉장고에서도 상할 수가 있다. 특히 장기보관하기 위해 냉동고에 보관할 때는 습기가 있으면 얼어 죽을 우려가 있다. 냉장고에 보관할 때 또 주의할 점은 종자를 냉장고에서 꺼낼 때이다. 차가운 냉장고에서 별안간 꺼내 상온에 노출시켜놓으면 결로(結露)가 되어 습기가 찰 수가 있다. 밀폐용기에 담아 넣어두었다가 꺼내서는 밀폐용기 내 온도가 바깥 온도와 같아질 때까지 용기 뚜껑을 열어서는 안된다. 결로를 막기 위해서다. 꺼내서 바로 밭에 가져다 파종한다면 상관은 없다. 겨울은 농부도 움츠리고 종자도 잘 움츠려야 약동하는 봄에 제대로 spring처럼 튀어오를 수있을 것이다. 입춘을 기다리며.....
24절기 쉽게 외우는 법 1

24절기는 순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리를 알면 쉽게 외울 수 있다. 먼저 위의 그림처럼 동지, 춘분, 하지, 추분은 누구나 알 것이다. 춘하추동으로 외워도 된다. 이 4절기는 24절기의 가장 중요한 뼈대이다. 절기의 변화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을 보여주는 절기이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며 그래서 해의 위치는 가장 낮으면서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의 반대편에 있는 하지는 동지와 정 반대이다. 낮이 가장 길며 밤이 가장 짧은 날이다. 그래서 해의 위치는 가장 높고 가장 긴 날이다. 춘분과 추분은 낮과 밤이 같은 날이다. 춘분을 지나면 밤보다 낮이 길어지고 날씨는 영하에서 영상으로 돌아선다. 추분은 반대로 밤이 낮보다 길어지며 서리 내리는 날이 가까워 온다.
이 네 절기는 해 입장에서 보면 큰 변화를 몰고 오는 전환점이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좀 다르다. 그러니까 동지가 되면 해가 가장 짧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해는 봄으로 돌아섰지만 지구는 아직 한참 겨울이다. 춘분이 되면 밤보다 낮이 길어지므로 해는 여름으로 돌아섰지만 지구는 아직도 봄이고, 하지가 되면 밤이 가장 짧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해는 가을로 돌아섰지만 지구는 아직 뜨거운 여름이다. 추분이 되면 이제 밤이 낮보다 길어지므로 해는 겨울로 돌아섰지만 지구는 본격적인 가을로 들어섰다. 이렇게 해의 운동보다 지구의 계절이 뒤처지는 것은 지구의 복사열 때문이다.
해의 운동보다 지구의 날씨가 늦게 변하기 때문에 필요한 절기가 바로 입(立)자 들어가는 네 절기다.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동지 지나면 해는 봄으로 돌아섰지만 아직 겨울에 머물고 있는 지구는 입춘이 되어야 비로소 봄에 들어선다. 마찬가지로 춘분 지나면 해는 여름으로 돌아섰지만 아직 봄에 머물고 있는 지구는 입하가 되어야 비로소 여름에 들어선다. 하지 이후 오는 입추, 추분 이후 오는 입동도 마찬가지다.

네 개의 입(立) 절기는 위의 그림처럼 정확히 네 절기의 정 가운데 위치한다. 이렇게 하면 8개의 절기가 외울 것도 없이 너무 쉽게 외워진다. 그리고 비로소 사계절의 큰 윤곽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봄은 입춘에서 입하까지, 여름은 입하에서 입추까지, 가을은 입추에서 입동까지, 겨울은 입동에서 입춘까지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고 보면 계절의 변화가 너무 단순할 것 같다. 입(立)의 절기에서 한 계절이 일어나 점점 그 기운을 드높이다 춘하추동 절기의 정점에 이르면 그 계절의 기운이 가장 승할 것 같고 그 전환점을 지나면 점점 그 계절의 기운은 퇴색하다 새로운 절기의 입(立)자가 들어서면 완전히 물러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절대 그렇지가 않다. 만약에 그렇게 단순하다면 24절기력은 너무 재미없이 밋밋하기만 할 것이다.
현실의 계절 변화는 이와 달리, 입(立) 절기에 들어 한 계절이 시작되면 서서히 새 계절의 기운이 솟아나지만 이전 계절의 기운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지난 절기의 기운은 입(立) 절기 다음이나 다 다음 절기에쯤 가야 거의 가시고, 춘하추동의 전환점 절기에 가야 그 계절이 본격적으로 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 절기부터 입(立) 절기 오기 전까지 그 계절의 기운은 완전히 온 세상을 장악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절기가 변하는 것은 좀 전에 말했듯이 지구의 복사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뿐만 아니라 지구의 축이 기울어진 것, 태양을 도는 지구의 공전 운동이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것 등의 이유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위치한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더 변화가 복잡하다. 아마도 다른 지역에 가면 24절기의 변화는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아무튼 입(立) 절기에 그 계절이 일어섰지만 전 계절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24절기의 역동적 변화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고 말은 했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에 둔감하여 계절이 변한지를 모른다. 아직도 전 계절인 줄로만 알고 산다. 이런 둔감한 사람들에게 비로소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는 계절은 바로 입(立) 절기 다음에 오는 절기다.
글 : 안철환(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 도시농업 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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