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이 불규칙한 직업을 가져서, 혹은 거주 지역에 러닝클럽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동호회 활동이 부담스러워서 어쩔 수 없이 독립군으로 활동하는 러너들이 적지 않다. 혼자 뛰는 것도 가끔은 호젓한 맛이 있지만, 매일 혼자 뛰어야 한다면 즐거워야 할 러닝이 지루하고 고독해지기 십상이다. 이럴 땐 마음이 맞는 한두 명의 러닝파트너를 만들어 함께 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설령 러닝을 하지 않는 직장 동료나 친구라도 러닝파트너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러너라면 저녁에 10km 훈련을 하려고 서둘러 집에 갔지만 밥을 먹고, TV를 보고, 조금 뭉그적거리다가 결국 허탕 친 경험을 한 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는 독립군들에겐 현관 앞에서 ‘좌절’하는 상황이 더 빈번히 일어나기 마련이다. 막상 뛰다 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나오길 잘 했다’ 생각이 들지만, 다음날도 역시 ‘하루 쉬고픈’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꾸준히 훈련하는 독립군에게도 고민은 있다. 다그치는 코치도, 힘을 실어주는 동료도 없이 고요한 천변 도로를 처벅처벅 달리고 있노라면 공연히 쓸쓸해진다. 무엇보다도 훈련강도와 양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할 때, 인터벌트레이닝이나 스피드 트레이닝처럼 고강도 훈련을 할 때는 혼자 하는 달리기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럴 땐 훈련을 함께 할 파트너가 필요하다. 달리는 동안 경쟁심과 끈기를 더해주고 지속적으로 동기유발을 해줄 수 있는 파트너는 훈련의 질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비슷한 파트너와 달리기, 경쟁의 효과
어느 유명한 마라토너는 ‘훌륭한 코치보다 훌륭한 훈련 파트너가 낫다’고까지 했다. 코치는 훈 트랙 밖에서 채찍질하지만 훈련파트너는 불과 한두 발 떨어진 곳에서 나를 채찍질해주기 때문이다. 훈련파트너의 긍정적 효과는 다양하다. 나보다 빠른 주자는 ‘따라잡아야 한다’는 의지를 만들어주고 나보다 느린 주자는 ‘이끌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만들어준다. 어떤 경우든 혼자 달릴 때보다 긴장을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다. 또한 어느 한 쪽의 컨디션이 가라앉아 페이스가 떨어지려 할 때 다른 한 쪽이 끌어줄 수 있으므로 훈련을 안정감 있게 끌고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와 파트너의 수준 차이가 너무 크면 안 된다. 장거리훈련을 할 때 어느 한 쪽이 페이스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곤란하다. 힘이 들더라도 앞서는 쪽의 페이스에 붙어갈 수 있는 정도가 알맞다. 신장의 차이나 주법의 차이가 너무 심해도 곤란하다. 리치 차이 때문에 보폭과 보속이 완전히 다르면 서로의 리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스트라이드주법 주자와 숏피치 주법 주자의 매치도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초보자는 잘못 된 주법이 몸이 밴 베테랑 주자와 달릴 경우 리듬이 완전히 무너지기도 한다.
너무 우수한 파트너는 오히려 독 될수도
자신만의 자세와 테크닉이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고교 육상 팀 선수들을 보면 팀의 에이스가 구사하는 주법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경향이 있다. 의식적으로 따라하는 게 아니라 매일 뒤를 좇아 뛰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것이다. 그렇다면 훈련파트너도 무조건 잘 뛰는 사람 중에서 찾아봐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엘리트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스피드와 기량이 있고, 최고수준의 기록을 향해 뛴다. 그러나 마스터스들은 나이나 생활환경, 목표의식에 따라 기량이 천차만별이다. 수준이 전혀 다른 상급 주자를 따라하다간 훈련효과도 얻지 못하면서 부상만 당할 뿐이다. 또 마스터스 중에는 Sub-3 이상의 뛰어난 마라톤 기록을 가졌지만 주법과 자세가 엉망인 경우도 많다. 당사자는 오랫동안 길들여져 괜찮을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된 쪽은 부상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Sub-3 주자 A의 훈련을 3시간 초반대 주자 B가 따라하는데 B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Sub-3를 달성하지 못한다. 기량 차이도 거의 나지 않아서 훈련도 완벽하게 소화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A는 자신의 기량을 유지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세한 차이지만 한 단계 올라가야 하는 B에게는 A의 훈련이 맞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주법과 기량차이가 비슷한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비슷한 신체조건보다 정서적 매칭이 중요
이런 여러 가지 고려사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적인 호감과 신뢰다. 스타일이 너무 달라 껄끄러운데 주법과 기록이 비슷하다고 억지로 함께 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뛰지 않을 때도 대화하고 교감하면서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이여야 한다. 마라토너에게 가장 무서운 부상은 ‘달리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좋은 러닝메이트라면 상대방이 그런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도록 응원하고 독려해줄 수 있어야 한다. 설령 수준차가 있어서 함께 하는 훈련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달리기 위해 집을 나서는 자체를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더없이 훌륭한 파트너다. 마지막으로 훈련 파트너와는 훈련만 하는 게 장기적으로 좋다. 서로 친밀해지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사생활을 지나치게 공유하거나 금전거래나 등으로 이해관계가 생기게 되면 훈련에 집중할 수 없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